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여전히 한국 팬들에게 생소한 종목이다. 기존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종목들은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스케팅 등 얼음 위에서 하는 빙상 종목들이었다. 슬라이딩 종목은 인기도, 인지도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의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세계랭킹 1, 2위를 다투는 봅슬레이 2인승 원윤종(32·강원도청)-서영우(26·경기BS연맹) 조와 스켈레톤의 신성 윤성빈(23·강원도청)이 국제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팬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물론 24일 기준 167일밖에 남지 않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봅슬레이에선 원윤종-서영우 조, 스켈레톤에선 윤성빈이 확실한 메달리스트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용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스포츠조선은 최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 중턱에 위치한 가건물에 얼음을 얼려 스타트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의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나태함은 없다
올림픽 개막까지 채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가 바뀐다는 건 큰 도전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전략을 세운 이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 감독의 입장이다. 나태함을 방지시키는 것이 이 감독의 또 다른 역할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봅슬레이 2인승의 브레이크맨이 바뀔 수 있다는 루머는 단지 루머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며 "내 마음 속에는 어느 정도 결정이 됐다. 1월 15일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 출전 선수 명단이 제출되는데 그 전까지는 누구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를 해야 한다.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지정해놓고 준비할 경우 다른 선수들은 '나는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니 대충하자'라는 나태함이 생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봅슬레이 2인승 브레이크맨 무한경쟁 돌입
변화는 봅슬레이 2인승의 브레이크맨에서 감지되고 있다. 원윤종과 지난 5년간 호흡을 맞춘 서영우가 지난 시즌 부상과 체력저하로 고생하면서 브레이크맨 교체설이 떠올랐다. 때 마침 올림픽을 앞두고 무서운 성장을 하고 있는 경쟁자도 나타났다. 한국 육상 단거리의 간판 여호수아가 지난 3월 봅슬레이로 종목을 전향한 뒤 대표팀 상비군을 거쳐 대표팀에 입성해 맹훈련 중이다. 여호수아는 지난 4월 말 대표 선발전에서 4위에 머물렀다. 당시 순발력이 서영우보다 뛰어나지만 썰매를 미는 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웨이트 트레이닝 결과 지금은 서영우와 맞먹는 파워를 갖추게 됐다. 이 감독은 "감독 입장에선 가장 잘하는 선수를 집중훈련시킬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특혜논란도 발생할 것이다. 논란이 신경 쓰인다는 것 보다 올림픽 전까지 열심히 해서 좋은 팀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서영우도 "선의의 경쟁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동기부여를 통해 훈련에 더 집중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15명으로 쓰는 기적
평창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한국 봅슬레이 쿼터는 기본적으로 네 팀을 예상하고 있다. 2인승 2팀과 4인승 2팀이다. 반면 이 감독의 바람은 최대 5팀이다. 2인승 3팀과 4인승 2팀이다. 한 팀이 더 늘어나면 그만큼 메달 확률이 높아진다. 이 감독은 "최대 5팀이 나가게 되면 총 14명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럼 대부분의 선수들이 올림픽을 경험하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확률적으로는 2인승 2팀과 4인승 2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올림픽에서 국가별 봅슬레이 쿼터는 상대평가다. 세계랭킹 1~3위 국가는 2인승, 4인승에서 3팀씩 출전할 수 있다. 4~9위 국가는 2팀씩, 10위부터는 1팀씩 출전할 수 있다. 이 감독은 "한국에서 봅슬레이를 실질적으로 하는 인구는 15명 뿐이다. 선수가 15명밖에 안되는 국가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바라보는 자체가 획기적이지 않을까"라며 저변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평창=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