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실패를 인정하고 미련을 버려야 한다. 순위경쟁이 치열한 7월 말, 삼성 라이온즈 1군에는 외국인 투수가 없다. 앤서니 레나도와 재크 페트릭, 두 선수 모두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돼 있다. 다른 팀 외국인 투수들은 1~2선발로 펄펄 뛰고 있는데, 삼성은 시계가 멈춰있다.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싶은 지난 시즌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29경기에서 4승11패-평균자책점 6.02. 올해 삼성 외국인 투수 둘이 거둔 성적이다. 웬만한 팀 '5선발급' 투수에도 못 미치는 기록이다. 물론, 올해 KBO리그 10개 구단 외국인 투수 최소 승수다. 페트릭은 18경기에 등판해 2승8패-평균자책점 5.65, 레나도는 11경기에 나서 2승3패-6.80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삼성은 보스턴 레드삭스 출신 우완 레나도와 총액 105만달러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시즌 삼성 소속으로 뛰었던 외국인 투수들보다 높은 몸값으로 달라진 면모(?)를 과시했다. 신속하게 1선발급 외국인 투수 영입을 확정짓고, 새로운 체제로 맞게 된 2017시즌 준비를 알렸다.
그러나 레나도 영입은 대참사로 마무리될 조짐이다. '원투 펀치'의 '원' 역할을 기대했던 레나도는 부상으로 코칭스태프의 애를 태우다가, 지난 5월 말 뒤늦게 1군에 첫선을 보였다. 1군 합류 후에도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다가 지난 주 사실상 시즌을 마감했다. 상대 타자가 때린 타구에 맞아 손가락이 골절됐다. 페트릭이 옆구리 통증으로 4주 진단을 받은 후 벌어진 일이다. 100만달러가 넘는 몸값, 시즌 전 기대치를 생각하면 기가찰 노릇이다. 가성비를 따져보면 속이 더 쓰리다.
현장에선 외국인 투수 교체를 요청했는데, 구단에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리기 어려운 시점에서 추가 투자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끝까지 싸워보고 싶은 코칭스태프는 답답하다. 프런트의 입장이 '어차피 가을야구는 힘드니, 있는 전력으로 적당히 시즌을 마무리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예기치 못한 부상이라고 해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외국인 전력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선수를 뽑아온 구단 프런트에 있다. 1~2선발을 맡기에는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투수들이었다.
다른 팀 외국인 어깨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KIA 타이거즈는 헥터 노에시와 팻 딘, 두 외국인 투수가 20승(6패)을 합작했다. NC 다이노스는 제프 맨쉽과 에릭 헤커가 18승(4패), SK 와이번스는 메릴 켈리와 스캇 다이아몬드가 17승(7패), 두산 베어스는 더스틴 니퍼트와 마이클 보우덴이 12승(9패), LG 트윈스는 데이비드 허프와 헨리 소사가 10승(11패1세이브), 넥센 히어로즈는 앤디 밴헤켄과 제이크 브리검, 션 오설리반이 11승(9패)을 거뒀다. 국내 투수만으로 중상위권을 유지하긴 어렵다.
팀마다 우여곡절이 있으나, 외국인 투수 한명은 제몫을 한다. 롯데 자이언츠 브룩스 레일리(8승7패), kt 위즈 라이언 피어밴드(7승8패)가 1선발로 던지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정도가 비교가 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삼성보단 낫다.
지난 해 삼성 외국인 투수 4명이 6승14패를 기록했다. 워낙 부진하다보니 외국인 투수만 잘 해주면 중위권 도약이 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하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KBO리그 팀별 외국인 투수 성적
KIA=헥터. 팻 딘=20승6패
NC=맨쉽. 해커=18승4패
두산=니퍼트. 보우덴=12승9패
LG=허프. 소사=10승11패1세이브
넥센=밴헤켄. 브리검, 오설리반=11승9패
SK=켈리. 다이아몬드=17승7패
롯데=레일리. 린드블럼. 애디튼=10승15패
삼성=페트릭, 레나도=4승11패
한화=오간도, 비야누에바=7승10패
kt=피어밴드. 로치=9승18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