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요."
박주영(32·FC서울)이 '그 때 그 시절' 이야기에 머쓱해 한다. 어느덧 10년도 훌쩍 지나버린 옛 추억,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월드컵) 이야기에 쑥스러운 듯 허허 웃는다.
2005년 6월, '스무 살'의 박주영의 여름은 뜨거웠다. 때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벌개진 속살처럼 쓰라렸고, 때로는 나뭇잎 사이로 퍼지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나이지리아전, 3분의 기적
2005년 6월 16일(한국시각)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2005년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조별리그 2차전이 열린 네덜란드의 에멘스타디움.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대2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한국은 승리가 간절했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한국은 경기 시작 18분 만에 상대에 선제골을 내주며 리드를 허용했다.
기회는 있었다. 한국은 후반 3분 상대 파울로 페널티킥을 얻었다. 그러나 키커로 나선 박주영이 기회를 놓치며 흔들렸다. 불행은 계속되는 듯 보였다. 박주영은 후반 30분 공중볼 경합 중 왼팔꿈치가 탈구되는 부상을 입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후반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단 2분. 한국은 0-1로 밀린 채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모두가 '끝났다'고 고개를 돌리던 순간, 박주영의 발끝에서 기적이 꿈틀댔다.
박주영은 후반 44분 프리킥 상황에서 상대의 두터운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날카로운 슈팅으로 나이지리아의 골망을 흔들었다. 박주영이 살려낸 희망. 기세가 오른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터진 기적의 역전골로 2대1 승리를 거머쥐었다.
집념으로 만들어낸 3분의 기적, 대한민국은 환호했다. 물론 박주영에게도 특별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당시를 돌아보면, 개인적으로는 나이지리아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응원해주신 팬들도 나이지리아전을 가장 많이 얘기한다"며 빙긋 웃었다.
▶성장의 시간, 자신 있고 즐겁게!
페널티킥 실축, 부상투혼, 짜릿한 동점골.
스무 살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경험들이 오늘날의 박주영을 만들었다. 그는 "세계청소년축구대회를 통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처음으로 겨뤄봤다. 대회에 두 차례 참가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성장한 것 같다. 덕분에 이후에 국가대표도 하고 프로 선수도 됐다. 남다른 감회가 있는 대회"라고 회상했다.
너무나 소중했던 그 시절. 그래서 박주영은 그 누구보다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눈앞에 둔 후배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박주영은 "한국에서 하는 대회다. 자신 있게, 편하게,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우리 후배들이 꼭 좋은 성적을 내리라 믿는다"고 응원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