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선택한 '구원 투수'는 정해성 전 전남 감독(59)이었다. 그가 위기의 슈틸리케호를 도울 수석코치로 임명됐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그를 추천했고, 울리 슈틸리케 축구 A대표팀 감독이 수용했다. 정해성 수석코치는 19일 FA컵 32강전 관전으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정 수석코치의 투입이 슈틸리케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에 주목한다. 정 수석의 발탁은 현재 한국 축구가 처한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 수석은 축구계에서 '할 말을 다 할 줄 아는 지도자'로 통한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박항서 코치(현 창원시청 감독)와 함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 또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선 허정무 감독(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을 옆에서 수석코치로 도왔다. 한국은 2002년엔 4강 신화를 썼고, 2010년엔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다.
정 수석은 히딩크와 허정무 두 색깔이 강한 감독들과 선수 사이에서 이상적인 다리 역할을 했다. 히딩크 시절엔 박항서가 감독 쪽에서, 정해성이 선수 쪽에서 양분해서 의사소통의 고리가 돼주었다. 남아공월드컵 때는 허정무 감독이 선수들에게 '아빠'였다면 정해성 수석이 '엄마'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2010년 월드컵 때 정해성 수석의 역할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내부에선 엄청 컸다"면서 "선수들의 수많은 건의사항이 주장 박지성과 정해성 수석 코치를 통해 허정무 감독에게 전달됐고, 많은 부분 수용돼 정말 좋은 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박지성을 주장으로 정한 것 등이 정 수석이 허 감독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물이다.
이제 정 수석 앞에는 슈틸리케 감독이 있다. 정 수석과 슈틸리케의 나이차는 네살이다. 정 수석은 "나는 누구와 일하더라도 내가 할 말은 다 한다"고 말한다. A대표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이라면 악역을 자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우리 축구팬들과 주변 축구계 인사들에게 그동안 심어준 이미지는 '고집불통'으로 요약된다. 또 자신의 전술적인 부분에 대해 건드리는 걸 무척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A대표 선수 선발에 있어서도 상식을 좀 벗어난 발탁이 종종 있었다.
과연 정 수석이 이런 민감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슈틸리케 감독에게 소신있는 발언을 할 수 있을 지가 포인트다.
정 수석은 그동안 대표팀에서 코치로 보좌만 한 건 아니다. 부천 SK와 제주 유나이티드 그리고 전남 드래곤즈에서 사령탑을 역임했다. 따라서 누구 보다 감독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할 말을 다해 조언할 수 있지만 격식과 예의를 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슈틸리케 감독과 정 수석의 '케미스트리(화학작용)'는 슈틸리케 감독이 어떻게 받아주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정 수석이 A대표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쓰지만 몸에 좋은 조언'을 쏟아내더라도 슈틸리케 감독이 귀를 닫고 받아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둘의 '케미'가 매우 중요해졌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