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소속 회원국은 소프트볼을 뺀 야구 부문만 125개국이다.
한국은 WBSC 랭킹에서 일본과 미국에 이어 3위다. WBSC가 지난 4년간 열린 국제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매긴 평점에서 한국은 4849점을 얻었다. 일본이 5699점, 미국이 4928점이다. 프로 리그가 빠진 평가이기는 하지만 한국은 전세계에서 야구를 잘 하는 나라로 꼽힌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다.
그런 한국 야구가 '야구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스라엘에 무기력하게 당했다. 한국은 지난 6일 고척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 개막전에서 연장 10회 끝에 1대2로 무릎을 꿇었다. 이스라엘은 공수주에 걸쳐 한국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몇몇 선수들은 당장 KBO리그에 와도 독보적인 활약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과시했다. 이스라엘은 기세를 몰아 7일 대만전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15대7로 승리, 2연승을 달렸다. 이 경기에서 이스라엘은 홈런 2개를 포함해 20홈런을 쏟아냈다. 1라운드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다.
이스라엘 야구는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일까. 아시아 서쪽 지중해를 맞대고 있는 중동의 '작은 강국' 이스라엘은 야구 리그에 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스라엘 야구협회 등록선수는 800명 정도이고, 2007년 세미 프로 리그가 잠시 운영되기도 했지만 워낙 저변이 약하고 인기가 없어 1년만에 문을 닫았다. WSBC 랭킹에서도 41위로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WBSC 자료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야구를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WBC 선수 차출의 특수성에서 이스라엘 야구 수준을 찾아야 한다. WBC 참가 규정을 보면 부모, 조부모의 국적을 따라 참가국을 결정할 수 있다. 즉 부모와 조부모 중 이스라엘 혈통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대표팀 차출에 응할 수 있다. 이번 대회 1라운드 이스라엘 대표팀 엔트리 28명 가운데 본토 태생은 한 명 밖에 없다. 우완투수 슬로모 리페츠가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을 뿐, 나머지 27명은 모두 미국 태생이다. 유대계 미국인들이라는 이야기다. 미국 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꾸렸다.
지정학적 위치를 떠올리며 선입견을 갖고 이스라엘을 바라봤던 우리들의 생각이 오산이었다. 이런 오산 또는 착각은 세계 유수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뉴욕 타임스는 이스라엘이 한국을 꺾은 것을 두고 '이번 대회에 참가한 16개국 중 세계 랭킹이 가장 낮은 이스라엘이 한국을 2대1로 꺾은 것은 기적중의 기적(miracle of miracles)'이라고 표현했다. 순전히 WBSC 랭킹만 보고 이스라엘을 바라본 것이다. 16개국 파워랭킹에서 이스라엘을 14위로 평가한 ESPN도 '이스라엘이 WBC 개막전에서 한국을 기절시켰다(Team Israel stuns Korea in WBC opener)'며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 야구는 생소하다. 이스라엘이 WBC 본선에 참가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9월 열린 최종 예선에서 브라질, 영국, 파키스탄을 잇달아 물리치고 마지막 남은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당시에는 대표팀 멤버가 지금과 달랐다.
그러나 이번 1라운드 엔트리 28명 중 전현직 메이저리거는 8명이나 된다. 나머지는 마이너리그 또는 독립리그 소속이다. 이스라엘 야구가 아닌 미국 야구를 기준으로 그들의 실력을 가늠해야 한다. 애초부터 얕잡아 본 것이 잘못됐다.
실제 한국전에 선발 등판한 제이슨 마르키스는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을 올린 스타 출신이고, 마무리로 나서 시속 153㎞ 강속구를 뿌린 조시 자이드는 2013~2014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불펜투수로 48경기에 등판한 경력이 있다. 게다가 유대인들의 결집력, 조국에 대한 사랑은 세계적으로 으뜸이다. WBC는 이들이 애국심을 발현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무대다.
역사적으로도 메이저리그에서 슈퍼스타로 성공한 유대인들이 꽤 많다. LA 다저스의 전설적인 왼손 투수 샌디 쿠팩스와 1990년대를 누빈 거포 숀 그린이 유대인이며, 1930~1940년대 홈런타자 행크 그린버그도 유대인이다.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의 야구에 대해 '도대체'라는 말보다는 '역시'라는 말을 써야 적절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를 밟은 유대인 선수는 160명이 넘는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