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믹스 커피를 많이 마셔서 많이들 걱정하시는데, 건강에는 아무 이상 없다던데요?"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무장해제'가 된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KBO리그를 대표하는 얼굴들과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야구장에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깊은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밥상인터뷰] 여덟번째 손님은 kt 위즈 김진욱 감독(57)이다. 한파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23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곰탕집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자택과 가까워 평소 즐겨 찾는 곳이다. 식당 직원들은 유명 야구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밥을 참 맛있게 먹는 손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독감에 걸려 사흘 동안 앓았다"는 김 감독은 목소리가 좋지 않았지만, kt의 새 시즌 구상을 이야기할 때는 데시벨을 높였다. 그는 '김진욱의 야구'가 아닌 'kt 야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김 감독 얘기를 들어봤다.
◇"커피 CF 러브콜? 전혀 없었다"
-장소를 곰탕집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평소에 가장 즐기는 음식이 뭔가.
▶편하게, 맛있게, 즐겁게, 많이 먹자는 주의다. 어떤 메뉴에 한 번 꽂히면 계속 먹는다. 피자를 한 달 동안 똑같은 종류로 먹은 적도 있다. 날 음식은 안 좋아하고 고기를 좋아한다. 내가 다니는 식당들은 야구 감독인지는 몰라도 잘 먹으니까 다 알아보는 편이다.(웃음)
-어릴 때부터 야구를 했으니 보양식도 많이 드셨을 것 같은데.
▶손, 발이 차서 부모님이 인삼을 늘 달여주셨다. 결혼하고도 빼놓지 않고 먹는다. 손, 발이 차면 동계 훈련 때 힘들다. 그 시절에는 장비도 열악했으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뼈도 약해서 사골도 정말 많이 먹었다. 부모님 정성에 효과가 있어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좋은 몸을 주셨지 않나.
-김진욱 감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커피'다. 소문난 믹스커피 애호가인데, 정말 건강에 문제가 없나.
▶나의 '커피 사랑'은 진실이다.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들께 물어보는데, 다들 문제 없다고 한다. 몸에 이상이 생길 만큼 마시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
-커피 CF 제의는 받은 적이 없나. 만약 들어오면 출연하실 생각인가.
▶들어온 적이 전혀 없다.(웃음) 제안을 받으면? 당연히 찍어야지. 그런데 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찍는다면 선수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매개체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독감 때문에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사흘 정도 집에서 꼼짝을 못했다.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뼈 마디마디가 아프더라. 사실 감독이라는 자리가 자신도 모르게 병들게 한다. 과거에는 당뇨, 콜레스테롤 지수, 간 수치까지 안 좋았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해도 쌓이는 것 같다.
◇마지막 소원? 영화 엑스트라 출연!
-두산 감독을 그만두고, 해설위원을 했다.
▶나는 해설을 못 할 거라 생각했다. 경상도 사투리도 있고, 말할 때 끝이 내려가는 스타일이라 전달력이 좋지 않다. 그래도 한번 시작하면 100% '올인'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볼펜을 입에 물고 배우들이 하는 발음 훈련도 해보고, 발성 연습도 열심히 했다. 같이 방송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임용수 캐스터의 도움으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카메라 울렁증'이 심했다고 들었는데.
▶사실 선수 시절 카메라 테스트도 받았다. 80년대 중반이라 홍콩 배우 주윤발이 인기였는데, 사람들이 내게 닮았다고 하면서 영화배우를 하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끼가 없어서 안 된다는 냉정한 답변을 들었다.(웃음) 언젠가는 영화 엑스트라라도 출연해보는 것이 나의 마지막 꿈이다. '카메라 울렁증'은 해설위원 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싫다. 예전에는 왜 다른 감독님들이 카메라 인터뷰를 할 때 고글을 쓰고 말씀하시나 이해가 안 됐는데, 막상 내가 해보니 긴장감이 사라지는 효과가 있더라.
-해설을 해보니 변화가 있었나. 가장 크게 차이를 느낀 부분은 무엇인가.
▶야구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해설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팀들에게 영향을 안 주는 선에서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다. 어쩔 때는 내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데.(웃음) 팀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 자제했다. 그래도 그렇게 예상을 한 것은 감독을 해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설은 현상을 설명하는 직업이고, 감독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예측을 해야 살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런 차이점이 있다.
-두가지를 모두 경험한 지금은 무엇이 더 어렵나.
▶해설이 어렵지만, 감독은 정말 어렵다. 무엇을 결정해도 100% 성공할 수 없다. 그 확률을 높이는 싸움인데, 결국 선수들이 잘해줘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램을 짜도 선수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안된다. 그리고 코칭스태프는 선수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원포인트'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선수들이 야구가 안 될 때, 자기가 가장 잘했던 고교 시절 영상을 가져오곤 한다. 내가 보기엔 지금 공이 더 좋은데, 선수들은 그때 느낌이 더 좋았던 것만 기억한다. 나는 그런 선수들에게 "그때와 지금은 몸이 다르다. 몸이 변했기 때문에 당연히 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때 폼을 찾는 게 아니라 느낌을 찾아야 한다. 그때보다 어려운 타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지는 것뿐이다.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