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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빠른 CAS, 수 억 날린 울산은 발만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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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하네요."

설 연휴는 악몽 그 자체였다.

K리그 클래식 울산 현대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변수가 또 불거졌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지난 28일(한국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출전관리기구(ECB) 결정에 대한 전북 현대의 제소 사실을 밝히며 '내달 3일까지 이 건을 처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ECB는 전임 스카우트의 심판매수 행위를 들어 전북의 올 시즌 ACL 출전 자격을 박탈한 바 있다.

CAS의 대응이 예상보다 빨랐다. 전북은 ECB 결정 뒤 법률자문을 거쳐 스카우트의 심판 매수행위가 승부조작으로 이어졌다는 정황이 나오지 않았고, 이번 사안에 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만큼 이중 징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CAS 측에 전했다. 그러면서 ACL 본선 출전 팀들을 결정하는 예선 플레이오프(PO·7일)에 앞서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당초 국내외 축구계에선 시간적 제약 탓에 PO 전까지 CAS 결정이 나오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CAS가 전북의 요구를 받아들여 신속한 판결을 공언하면서 K리그 팀들의 ACL 출전 구도는 또 한번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만에 하나 CAS가 전북의 손을 들어주면 제주, 울산의 일정은 또한번 틀어진다. 전북으로부터 본선 출전권을 승계 받은 제주는 다시 예선 플레이오프(PO)로 돌아가 7일 안방에서 키치SC(홍콩)와 단판승부를 치러야 한다. 제주의 PO 출전권을 얻은 울산은 ACL 출전이 '없던 일'이 된다. PO 일정에 맞춰 울산 시내에 호텔 예약을 마친 키치도 모든 준비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울산은 ECB 결정 뒤 AFC로부터 출전 관련 공문을 접수했고 급히 ACL PO를 준비했다. 내달 10일까지였던 스페인 전지훈련 일정을 대폭 축소해 지난 28일 조기 귀국했다. 개보수를 실시한 홈구장 울산월드컵경기장 시설을 급히 점검하고 그라운드 보수 일정도 앞당겼다. 전지훈련 취소 위약금 뿐만 아니라 급히 홈 경기를 준비하면서 수 억원을 지출했다.

이러한 손해를 모두 감수했건만 만에 하나 ACL 출전이 물거품이 되면 돈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유무형의 손해가 불가피하다. 김도훈 감독 취임 뒤 한 달 남짓 급히 시즌을 준비했던 울산 선수단도 계속 바뀌는 일정 탓에 불거진 혼란으로 올 시즌 자체를 망칠 수도 있다.

울산 구단 관계자는 30일 "언론을 통해 CAS 발표를 접한 뒤 밤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며 "스페인에서 귀국한 선수단은 오늘부터 훈련에 돌입하는데, 모두가 난처해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ACL 출전이나 CAS의 빠른 대응 등 설마 하던 일들이 계속 현실이 되니 혼란스럽다"며 "만약 ACL 출전이 무산되면 우리가 입은 손해는 어떻게 보상 받아야 할 지도 걱정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CAS는 국내 법원의 가처분 신청과 유사한 '잠정처분'으로 이번 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판결까지 갈 경우 본선 출전팀이 결정될 7일 ACL PO 일정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도 CAS의 잠정처분으로 대한체육회 결정을 뒤집고 2016년 리우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한 바 있다.

하지만 CAS 잠정처분이 '반전'을 의미하진 않는다. CAS 결정은 강제력을 갖지 못한 '권고'에 해당한다. ACL 출전 자격을 결정한다는 명목으로 AFC가 신설한 ECB가 CAS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CAS 결정은 '메아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출전 자격 문제였던 박태환 건과 달리 여러 팀의 이해 관계가 맞물린 국제대회라는 점도 CAS 잠정처분의 효과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없는 이유다.

축구계의 한 관계자는 "AFC가 ECB를 앞세운 것은 전북의 CAS 항소까지 염두에 두고 내린 고도의 전략"이라며 "AFC가 CAS 결정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본선행이 결정된 제주나 PO에 나설 울산, 키치의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그에 따라 불거지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물리적 한계도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전북이 CAS 판결을 근거로 AFC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어도 ACL 출전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