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가 허용된 이후 한국 야구 대표팀은 '드림팀'이라고 불렸다.
최고의 선수들로 최고의 전력을 꾸려야 한다는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병역 미필 선수들을 위주로 뽑은 적이 있고, 구단간 배분을 감안해서 뽑은 적도 있지만 그래도 '전력만큼은 최고여야 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의 땀과 노력은 숱한 결실로 이어졌다. 그 시절 프로야구를 꿈꾸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드림팀이었다.
최초의 드림팀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때 구성됐다. 한국은 박찬호 등 군미필 선수들 위주로 출전해 6전승 금메달을 따냈다. 김응용 감독이 이끈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은 3-4위전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송진우, 이승엽을 앞세워 6전승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KBO리그와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 4강 신화를 이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일본과 쿠바를 준결승과 결승에서 각각 누르며 9전승의 금메달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드림팀의 성과는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어졌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고, 2015년 제1회 프리미어 12에서는 오타니를 앞세운 일본을 도쿄돔에서 격파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내년 3월 개최되는 제4회 WBC를 준비하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드림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유가 어떻든 불완전한 전력을 가지고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든 법이다.
KBO 기술위원회는 지난달 10일 WBC 대표팀 최종 엔트리 28명을 확정했다. WBC 대회조직위원회 제출 마감은 내년 2월 6일이지만, 앞서 해당 선수들이 심신에 걸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일찌감치 28명의 면면을 공개한 것이다.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포함됐고, 오프시즌 FA가 된 선수들도 이름을 올렸다. 여론을 의식해 논란이 돼온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제외했지만, 최종 명단에는 투타에 걸쳐 최고의 선수들을 뽑으려는 기술위원회의 흔적이 묻어났다. 김인식 감독이 이번에도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다.
그러나 엔트리 구성 후 한 달도 못돼 '김인식호'는 삐걱거리고 있다. 부상과 사고 등의 악재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엔트리를 발표하던 날 두산 투수 이용찬이 팔꿈치 수술을 발표해 빠지게 됐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한화 2루수 정근우가 무릎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이용찬은 심창민으로 교체됐고, 정근우는 "출전하는데는 문제없다"며 참가 의지를 내비쳤으나, 이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표팀 에이스로 기대를 받았던 김광현은 지난 6일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기로 결정해 앞으로 1년간 재활에 매달려야 한다. 대표팀 단골 멤버였던 김광현의 이탈은 매우 뼈아프다. 여기에 최근 강정호가 음주운전으로 입건되면서 대표팀에서 빠져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KBO는 "강정호의 대표팀 엔트리 문제는 기술위원회를 열어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WBC까지 안고 가기는 무리다.
김현수 추신수 등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출전 의지를 강하게 밝혔으나, 소속 구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FA 양현종과 차우찬도 해외진출을 할 경우 소속 구단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한 시즌을 뛴 이대호 역시 거취가 결정되지 않아 출전이 불분명하다.
1라운드에서 한국과 맞붙을 A조 다른 국가들이 최상의 멤버를 구축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암울하게 들린다. 네덜란드는 릭 밴덴헐크를 뽑아 에이스를 확보했고, 이스라엘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포진시키는 등 대회를 단단히 준비하는 모습이다. 한국은 2013년 3회 대회에 이어 2연속 1라운드 탈락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흘러가는 상황을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어떻게든 대안을 마련하고 전력을 정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WBC는 부모 또는 조부모의 국적을 따라 국가를 선택해 출전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 가운데 이에 해당되는 선수들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KBO에 따르면 타이슨 로스, 조 로스, 행크 콩커(한국명 최 현), 다윈 바니 등이 한국 대표팀에 포함될 수 있다. KBO리그에서 오랫동안 뛴 외국인 선수들을 귀화시키자는 의견도 멀리 할 필요는 없다. 아직까지 외국인 선수가 대표팀에 포함된 적은 없다.
이용찬, 정근우, 김광현, 강정호는 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이번 WBC를 이끌 선수들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멘붕'에 빠질만도 하다. 드림팀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선수 몇 명에 의존하는 건 어제 오늘이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이 빠져도 국제대회를 걱정없이 치를 수 있는 선수층 확보는 여전히 요원하다. 아마추어 저변 확대, 나아가 프로 구단의 체계적인 선수 육성은 출범 35년 역사의 KBO가 지금까지 고민해 온, 또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과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