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건이 터진 후 우리 가족은 울음바다였다."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 응한 최모 경위의 형은 울먹였다. 보름전 쯤 동생 최모 경위의 기일을 맞았다. 최모 경위는 2014년 겨울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에서 근무중 청와대 소위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를 받았고, 주동자로 몰렸다. 차안에서 장문의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윤회라는 비선이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청와대 문건을 기자에게 건넨 혐의를 받았다. 정권 초기였던 당시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문건과 제보가 제대로 수사됐더라면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고 최 경위의 형은 "최순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저희 가족은 울음바다였다. 매일 울었다. 매일 울었다"고 했다. "우리 집안 전체가 그렇다. 미치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은 집에 와서 그랬다. 검찰 조사 받을 때도 사인 안했고, 영장 실질심사 받을 때도 의지할 곳은 하늘밖에 없다고 천주교 묵주를 잡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 치고 그랬다고 하더라. 영장실질심사때 마이크까지 껐다고 들었다"고 했다. "동생이 체포 전에 우리집에 왔다. 헤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누명을 써서 얼굴이 반쪽이 돼서 왔다. 돈도 없고… 변호사를 한 경위와 함께 샀다. 돈이 없어서… 어머님이 임대 아파트 사셨는데 보증금 뺀 3500만원으로 변호사비 내기로 했는데… 그날 밥을 세숟갈도 못뜨더라. 동생이야기 하면 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당시 아버지가 휠체어 타고 계시고 제가 모셨다. '보증금으로 변호사 사는 것도 아깝다. 되지도 않을 거다. BH와 싸움 이건 아니다' 그런 말을 했다. '형, 애 좀 부탁해'하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구치소에서 최순실은 곰탕 해다주고 우병우 같은 경우는 오리털 파카라도 갖다줬는데 제 동생은 노란 초가을 점퍼 차림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추웠겠나. 소변도 못보러 가게 하고 밥이라도 줘야할 텐데 밥도 안주고…"라고 했다. "내 동생이 포기를 하고 생목숨을 끊었다. 생목숨을 끊었지만 이건 고위층들의 타살이나 마찬가지다. 자살하게끔 몰고 간 거다. 사실상의 타살"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경위의 휴대폰에선 이때 이미 '최순실이 대통령 개인사 관장한다는 첩보가 들어있었다'는 김현정 PD의 말에 고 최 경위의 형은 "이미 그때 당시 정보계나 언론계에는 비선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더라"고 답했다. . 청와대 문건 유출의 주동자로 내몰리면서 목숨까지 내놓을 만큼 억울했던 동생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동생을 주동자라고 '네가 시켰잖아' 이렇게 나오는데, 동생은 환장하는 거다. 집을 팔아서라도 대법원까지 가보자고 했더니 동생이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2년만 남았어도 싸워보겠는데, 4년이나 남았다. 그새 나는 폐인 돼버려. 나는 이길 수가 없어. 시키는 대로 하고 잠이라도 푹 자고 싶다'고 하더라."
동생의 죽음에 대해 '권력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봤다. "청와대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위세 떨치며 살면서 '경찰'한테 누명 씌워서 제 동생은 죽고, 한경위도 가정이 엉망일 거고…"라며 분노했다. "그때 한 경위한테 남긴 제 동생의 유서를 보셨으면 알 거다. '너를 이해한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썼다.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너희들은 진실을 밝히라는 뜻이다. 양심고백하라는 뜻이다. 확실하게 양심고백해줄 사람은 한 경위뿐이다. 훌훌 털고 제대로 깔끔하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소망도 밝혔다. <스포츠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