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지소연은 손흥민에게 볼뽀뽀를 받았다. 누구에게 볼뽀뽀를 받고 싶은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미녀 축구선수' 서현숙(23·이천대교)의 얼굴이 빨개졌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이천수(은퇴)는 서현숙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자신의 이름을 얘기해달라는 눈치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서현숙이 화답했다. "볼뽀뽀를 생각해보진 못했지만 안전하게 유부남인 천수 오빠에게 받고 싶다." 폭소가 터졌다. 13회째를 맞은 홍명보자선경기의 1막은 화기애애하게 열렸다.
홍명보자선경기에는 국내외 스타들의 기발한 세리머니가 넘쳐난다. 무엇보다 기존 경기의 딱딱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던져 망가지는 '조커'가 필요하다. 이번 자선경기에선 '조커'를 자청한 이가 있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은 이천수다. '끼'하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오랜 만에 축구의 자리에 선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운을 뗀 이천수는 "홍명보 이사장님께 '이 자리에 서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마지막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시더라"며 입담을 과시했다.
이천수는 이날 솔깃한 제안도 받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축구 대신 하프타임 때 마이크를 잡고 노래할 의향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천수는 최근 가요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에 출연하기도 했다.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가수 못지 않은 실력을 뽐냈다. 이에 대해 이천수는 "마이크만 보면 노래하고 싶다"며 농을 던진 뒤 "마음 편히 쉬니깐 발목이 좋아지고 있다. 재활도 잘 했고, 100%는 아니지만 경기장에서 누가 될 정도는 아니다. 프로그램 출연 이후 인터뷰에서 '더 이상 노래는 안하겠다'고 했지만 좋은 축제인 만큼 생각해보겠다"며 웃었다.
홍명보 감독은 "천수가 은퇴 경기도 못했다고 들었는데 은퇴하는데 있어 조금이나마 축복받게 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천수는 "홍 감독님께서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주시는지 몰랐다"며 또 다시 웃음보를 자극했다.
2003년부터 시작된 홍명보자선경기는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이었다. 자선경기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은 소년소녀가장과 소아암 환우 어린이 돕기에 쓰여졌다. 올해는 또 다른 의미가 추가됐다. 청년 실업 해소였다. 홍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캐치프레이즈도 '청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로 잡았다. 홍 감독은 "올해 미국에 있을 때 가장 많이 접했던 소식이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미래인데 이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희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이번 자선경기에 참석하는 선수들이 대한민국에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 대회는 나에게 소중하다. 앞으로 얼만큼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내가 축구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까지 잘하고 싶은 일이다. 중요한건 나혼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명보장학재단이 주최하는 홍명보자선경기는 27일 오후 3시 스포츠·문화의 성지인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다.
홍 감독은 자선경기를 마친 뒤 1월 초 도전에 나선다. 중국 항저우 그린타운을 이끌게 된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인 홍 감독이 K리그와 일본 J리그 팀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항저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축구도 축구지만 중국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나라다. 인간으로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중국에서 지낸다는 것도 축구인을 떠나 인간으로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휴식을 취하면서 잘한 점과 잘못된 점을 정리했다. 지금이 다음 단계를 가지고 일할 시간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항저우와의 계약서에는 독소조항을 모두 제거했다. 홍 감독은 "구단과 충분히 얘기했고 생각도 잘 맞았다. 독소조항도 모조리 뺐다. 협상에 문제가 없었다"고 전했다.
유소년 성장에 초점을 맞춘 항저우의 구단 철학에 좋은 인상을 받은 홍 감독은 프로 팀의 성적 향상도 책임져야 한다. 홍 감독은 "지난해(11위)보다는 성적이 좋아야 할 것이다. 강등권과 4점차였다. 구단에서도 내년 시즌 팀이 강등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며 "내가 시작을 할 때 팀을 중위권으로 올리는 것은 좋은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구단에선 내년이 역사상 가장 어려운 해라고 하더라. 그러나 나는 도전을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어려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최근 일본에서 오카다 다케시 전 항저우 감독을 만나 조언을 들었다. 홍 감독은 "오카다 감독을 일본에서 만났다. 유소년 총괄로 1년에 5~6번 구단을 방문하는데 지금 선수들은 오카다 감독이 항저우를 맡았을 때와 약간 달라졌다. 정보 교환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항저우에서의 성공에 대해서는 "아직 그 수준을 언급하긴 이르다"며 "향후 몇년 후의 얘기다. 일단 나 역시 처음 시작한다.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든다. 처음하는 일이기 때문에 굉장히 열정적으로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결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팀이 미래를 가지고 좋은 팀으로 만들어나가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항저우는 근래 상위권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팀이었다. 축구는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선수들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도록 잘 이끌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셰어 더 드림 풋볼 매치 2015' 출전 선수 명단
▶사랑팀(13명)
감독=최진철 포항 감독
선수=김병지(전남) 이종호 이근호(이상 전북) 염기훈(수원) 김창수(가시와) 김보경(마츠모토) 황의조(성남) 이천수(은퇴) 정대세(시미즈) 서현숙(이천대교) 송진형(제주) 이상민(울산현대고) 박주영(서울)
▶희망팀(13명)
감독=안정환 MBC 해설위원
선수=김승규(울산) 김진수(호펜하임) 구자철 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 박주호(도르트문트) 이승우(바르셀로나 B) 장현수(광저우 부리) 염호덕 임근영(이상 청춘FC) 지소연(첼시레이디스) 김종훈(청각장애 국가대표) 서경석(개그맨) 이대은(지바롯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