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국은 일본은 '돈'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일본이 프리미어12를 주도적으로 창설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자금력 덕분이다. 프리미어12 창설의 표면적인 이유는 야구의 세계화다.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되는 등 국제적으로 폭넓은 인정을 못받는 야구의 종목상의 한계를 극복해 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대회다.
하지만 일본의 그런 진정성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B조 1위로 8강에 진출한 일본은 당초 일정대로라면 준결승에 오를 경우 20일에 경기를 치르게 돼 있다. 그런데 NPB(일본야구기구)의 프리미어12 일본 입장권 발매안내 사이트에는 '일본이 준결승에 오르면 무조건 19일에 경기를 한다'고 돼 있었다. 결승전이 21일 열리기 때문에 일본에게 하루의 휴식을 무조건 보장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일정변경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일본의 진정성이 또 의심받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다. 이미 2006년 메이저리그사무국 주도로 각국 야구 기구는 WBC를 창설했다. 역시 창설 배경은 야구의 세계화다. 전 세계 최고 선수들이 참가하는 최고의 대회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굳이 정체성이 불분명한 대회를 하나 더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이 당연히 일었다.
그러나 일본은 야구 대국 미국의 협조없이 대회 창설을 밀어붙였고,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수뇌부를 움직여 각국의 야구협회가 협조할 수 있도록 작업을 진행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엄청난 자금력이 작용했다.
메이저리그사무국은 이번 프리미어12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참가를 금지했다.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는 프리미어12에 참가할 수 없다는 지침을 30구단에 통보했다.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도 지난 15일 입국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회에 나가고 싶었지만, 메이저리그 방침이 그러하니 나가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프리미어12 창설에 총력을 기울인 일본이 우승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야구는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다. 2016년 자카르타올림픽서도 정식종목에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일본이 개최하는 2020년에는 이변이 없는 한 다시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주도하는 국제적 규모의 대회가 필요하고, 덧붙여 일본 야구가 세계 톱클래스 수준이라는 결과물이 나온다면 도쿄올림픽서 야구가 흥행과 명분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은 열도를 강타한 오타니 쇼헤이(니혼햄)의 상품화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타니는 마쓰자카 다이스케, 다르빗슈 유 등 일본을 대표하는 에이스 계보를 잇는 '국보' 투수로 취급하고 있다. 오타니의 활약으로 이번 대회서 우승한다면 향후 메이저리그 진출과 관련해서도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다.
야구가 국기나 다름없는 일본은 야구에 관한 자존심만큼은 세계 최고여야 한다는 꿈을 지닌 나라다. 프리미어12 우승은 그 출발점이며, 2020년 도쿄올림픽서 성과를 맛보자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