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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김정미''울지마,전민경' '핵꿀잼'챔프전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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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야 사는 게임, '절친' 골키퍼의 운명은 얄궂었다. '11m 룰렛' 앞에 서로를 마주했다. 잔인한 운명이 엇갈렸다. 현대제철 수문장 김정미의 슈팅이 골망을 흔드는 순간, 이천 대교 수문장 전민경이 골대 앞에 쓰러졌다. 김정미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이 "와!"하고 일제히 몰려들었다. 인천 현대제철의 우승이었다.

9일 밤, 인천 남동아시아드경기장에서 펼쳐진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은 드라마였다. 1차전에서 0대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팀은 2차전에서도 120분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 전반 8분 김상은의 골로 이천 대교가 승기를 굳혔지만, 인천 현대제철은 연장 후반 종료 직전 비야의 페널티킥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연장 혈투도 모자랐다.

다리에 쥐가 난 선수들이 그라운드 곳곳에 쓰러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한차례 들것에 실려나갔던 선수들은 오뚝이처럼 일어나 달리고 또 달렸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다. 4명의 키커가 나서, 각 1명씩 실축했다. 마지막 키커만을 남긴 상황에서 또다시 3-3, 마지막 키커의 발끝에 끝날 것같지 않던 승부의 끝은 거짓말처럼 '국대 골키퍼'간 맞대결이었다. 양팀 감독의 마지막 선택은 짜맞춘 듯 골키퍼였다. 초등학교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고동락'해온 동갑내기 수문장, 라이벌이란 말을 애써 거부하던 이들이 외나무 격돌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상 첫 통합 3연패에 도전하는 인천 현대제철, 최다우승 4회 기록에 도전하는 이천 대교 모두 절실했다. 전민경과 김정미가 마주한 순간, 관중석의 팬들은 일제히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역사적인 순간, 보기 드문 명장면이 연출됐다. 결과는 전민경의 실축, 그리고 김정미의 성공, 우승팀이 결정된 순간 뜨거운 함성이 그라운드에 물결쳤다.

최인철 현대제철 감독은 "어제 바로 이 자리에서 승부차기 연습을 했다. 김정미를 마지막 키커로 결정하면서, '네가 끝내라'고 했는데 말대로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주장 이세은은 "연장 후반 종료 직전 대교 벤치에서 세리머니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홈 연고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올시즌, 우리 홈구장에서 우승을 내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이를 악물었다"고 말했다. 반쪽 전력으로 챔피언 탈환에 나선 이천 대교의 짜릿한 선제골, 종료 직전 현대제철의 극적인 페널티킥 동점골부터 승부차기 승리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120분 혈투, 이날 하루만큼은 '슈퍼매치'도 울고갈 '원더매치'였다. 소름 돋는 인천 극장이었다.

인천 현대제철의 극적인 통합 3연패만큼 이천 대교의 투혼과 눈물도 회자됐다. 우열을 가릴 수 없었던 박빙의 승부였기에 아쉬움은 컸다. 준우승 트로피를 받아드는 순간까지도 주장 전민경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연장 후반 전가을의 슈팅에 오른발을 쭉 뻗으며 막아서는 동물적인 선방은 그녀였기에 가능했다. 동료들은 전민경을 끌어안고 위로했다. 1-2차전 내내 몸 던져 비야를 막아내느라 만신창이가 된 '센터백' 박은선이 양 발목에 두터운 아이싱을 하고 절뚝절뚝 그라운드를 나섰다. 무릎 부상 재활중인 수비수 심서연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말했다. "그래도 우리 오늘 정말 잘했죠. 정말 잘했어요."

이날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은 "정말 좋은 경기를 봤다. 운동장을 찾은 여자축구 팬들이 큰 즐거움을 갖고 가셨을 것"이라며 선수들의 투혼을 치하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천 현대제철의 첫 통합 3연패를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천 대교가 아쉽게 졌지만, 박수받아 마땅하다.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했다. "리그의 수준이 결국 그 나라 대표팀의 수준이고, 대표팀의 수준이다. 오늘 경기를 보면서 내년 시즌을 더욱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