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새벽, 창원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두산 버스 안. 최재훈은 말이 없었다. 역전패의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듯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두산은 19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NC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0-0이던 8회초 오재원의 솔로포로 리드를 잡았다가 8회말 2점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 배터리는 상대 스퀴즈 번트 작전에 흔들렸다. 1-1이던 1사 3루에서 김성욱이 번트 자세를 취했고, 투수 함덕주는 슬라이더를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던졌다.
최재훈은 버스 안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 때 옆 자리에 앉은 양의지가 그를 격려했다. 최재훈이 "죄송해요 형, 저 때문에 졌어요"라고 하자, "무슨 소리냐, 나라도 그 공은 잡을 수 없었다. 2013년처럼 보여줘라. 가을 야구의 왕은 너다"라고 했다. 양의지는 오른 엄지 발가락 미세 골절로 남은 시리즈 선발 출전이 불투명하다.
최재훈은 그 말을 듣고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21일 "평소에도 (양)의지 형도 같은 방을 쓴다. 매번 좋은 말씀을 해 주신다"며 "형이 부상을 당하자, 홍성흔 선배님도 '내가 나가는 건 네가 못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끝까지 책임지라'고 격려해 주셨다. 힘이 된다"고 밝혔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함덕주의 폭투 장면은 운이 없었다. 볼카운트가 2B로 몰린 상황에서 슬라이더 사인이 벤치에서 나왔고, 3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은 것을 확인한 함덕주는 일부러 공을 높이 뺐다. 이에 반해 최재훈은 슬라이더가 낮게 떨어질 것을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스퀴즈 번트와 블로킹, 두 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공이 높게 날아왔고 도저히 순간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 최재훈은 "상대 타자가 직구만 노리는 볼카운트였다. 슬라이더 사인은 나쁘지 않았다고 보는데, 그립 자체가 피치 아웃을 하기는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이제, 과거는 깨끗이 잊고 플레이오프 3차전을 준비할 때다. 그는 "(양)의지 형이 다 나을 때까지 내가 그 공백을 잘 메워야 한다. 무조건 개인 성적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며 "그 동안 경기 출전 시간이 적어 타격감이 썩 좋지는 않다. 벤치 눈치를 보는 배팅을 했는데 과감히 내 스윙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소 (양)의지 형의 영상을 많이 본다. 내가 조금 더 공격적인 볼배합을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양)의지 형과 내 스타일을 반반 섞어 리드를 할 생각"이라며 "어제는 잠이 안 와 집앞 공원을 돌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2013년의 좋은 기억을 살려 열심히 해 보겠다"고 말했다.
최재훈은 또 "테임즈 앞에 주자가 없는 것이 중요하다. 주자가 없으면 테임즈가 의식적으로 홈런 스윙을 한다"면서 "(양)의지 형이 '눈치 보지 말라. 주눅 든다. 너는 나보다 수비 잘한다.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해줬다. 타석에서는 번트나 팀 배팅으로 후속 타자에게 찬스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잠실=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