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미리 결단을 내렸다. 삼성은 20일 해외 원정 도박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들(3명으로 알려졌다)에 대해 한국시리즈 출전금지 처분을 내렸다. 이들은 선발-중간 등 마운드의 주축 선수들로 전해졌다. 지난 15일 언론을 통해 사건이 알려진 지 닷새만이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제출 5일전. 삼성은 왜 서둘러 진화에 나섰을까. 생각보다 사건이 일파만파 번져 야구단 뿐만 아니라 그룹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이름은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상 온라인에 실명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평소 확실한 실력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들이다. 배신감이 컸다. 팬들의 성토는 거셌다. 결국 삼성은 경찰 수사중인 2명이 아닌 처음부터 혐의 의혹을 받았던 3명 모두를 제외시켰다.
당초 삼성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 추이를 지켜본다는 원론적인 입장이었다. 검찰은 3명의 내사 의혹에 대해 향후 수사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소문 수준이었으나 최근 경찰에서 2명에 대해 출입국 기록, 송금내역 등을 조사중이라고 했다. 2명이 비슷한 시기에 출입국을 한 정황도 잡아냈다. 계좌추적과 해외에 카지노 VIP룸을 운영했던 조직폭력배 조직원과 통화내역을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삼성이 미온적인 대처를 하는 사이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해당 선수들은 자신들의 결백을 속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소속 선수의 물의가 팀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그룹 이미지까지 훼손될 지경에 놓였다. 이대로 손놓고 있다간 정말 큰 일이라는 위기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수 년전부터 글로벌 기업 이미지 강화에 노력했다. 국내 매출보다는 해외매출 비중이 월등하게 많다. 투명하고 깨끗한 기업 문화야 말로 글로벌 기업의 첫 번째 덕목이다. 프로야구 리그 5연패가 욕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탐대실이다.
삼성 그룹 고위관계자는 삼성 선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의혹 사건이 벌어진 뒤 "사견이지만 원정도박이 사실이라면 삼성의 그룹문화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 선수들을 한국시리즈에 뛰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혐의점이 확실하다면 감춘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수사당국의 소환일정은 계좌추적, 각종 기록확인 등으로 한국시리즈 이후로 밀릴 수 밖에 없다. 물리적인 시간을 100% 이용, 해당 선수들을 경기를 뛰게 해 우승을 거머쥐더라도 이후에 소환조사가 벌어져 혐의가 밝혀지면 큰 낭패다. 리그 5연패를 하고도 삼성 구단은 최악의 추문 스캔들에 휘말릴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이 선수들을 빼고 팬들 앞에 구단의 허술한 선수 관리 등을 사죄한 뒤 좀더 당당하게 경기에 임하는 것. 이를 정석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