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아무리 고민한들 뭐하나 생각했다. 결국 야구는 해줘야 할 선수들이 해줘야 하는 경기다."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은 18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결단을 내린 듯 했다. 김 감독은 "3번 민병헌, 6번 홍성흔이다"라고 말하며 "고민한들 뭐하겠나. 결국 이 선수들이 해줘야 이긴다"고 말했다. 복잡한 타순 고민에서 마음 편히 내려놓은 모습. 공교롭게도 이 두 선수가 합작해낸 홈런 3방으로 두산은 7대0 완승을 거뒀다.
김 감독은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3번-지명타자를 놓고 많은 실험을 했다. 1차전 3번 민병헌-6번 홍성흔이었다. 하지만 1차전 두 사람 성적이 형편없었다. 2차전 민병헌을 6번으로 내리고 홍성흔은 뺐다. 홍성흔이 빠진 자리에 1차전 끝내기 안타를 친 박건우를 투입했다. 박건우의 타순은 3번. 큰 경기 경험이 거의 없는 박건우는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김 감독은 3차전에도 같은 타순으로 밀어부쳤는데 지명타자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하며 패해 3연승 기회를 놓쳤다. 4차전 민병헌을 다시 3번으로 돌렸다. 또 실패. 9회 기적같은 대역전극이 나왔기 망정이지 사실상 진 경기였다.
감독들은 단기전 승리를 위해 이것저것 많은 애를 쓴다. 특히, 초보 감독들이 받는 압박감은 더욱 심하다. 가장 중요한 게 타순과 투수 교체 타이밍. 정규시즌에는 아무 생각없이 쭉쭉 써내려가는 타순이 포스트시즌에는 쉽지 않다. '이렇게 해서 여기서 망하면 어쩌지', '오늘은 이 선수가 왠지 칠 것 같은데'라는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감싸고 돈다. 그렇게 단기전 깜짝 타순이 나오는 경우들이 많다. 문제는 야구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 밤새 고민해 작성한 타순으로 이기기만 한다면 모든 감독이 며칠 밤이라도 잠을 포기할 것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 같이 이 선수로 이 타순에 가져다놓으면 못치고, 그래서 다른 선수를 배치하면 또 못친다. 이 선수를 넣을까, 저 선수를 넣을까 마지막까지 고민한 선수가 있다면 꼭 그 선수에서 찬스가 걸리는 게 야구다.
그럴수록 단순해져야 한다. 현장에서 말하는 '에버리지'를 믿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초보 김 감독에게 준플레이오프 경험은 큰 재산이 됐다. 큰 경기일수록 오히려 변칙 없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에 정공법을 택했다. 그리고 경기 후 '김태형의 용병술이 대적중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감독들이 가장 희열을 느끼는 경기, 김 감독이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그 희열을 맛봤다.
창원=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