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참 많은 비난을 받았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정성룡(30·수원)에게 악몽이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나락으로 추락한 꼴이었다. 남아공 대회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신화를 이끌었던 그가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2경기에서 5실점했다. A대표팀 '넘버 원' 골키퍼가 순식간에 '넘버 3'로 몰락했다.
그래도 정성룡만큼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을 갖춘 수문장이 드물었다. 정성룡은 지난해 9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11월 요르단과의 친선경기에서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러나 이후 더 이상 기회를 받지 못했다. 1월 호주아시안컵부터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 김승규(25·울산)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6월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평가전, 미얀마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도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출전 기회는 잡지 못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정성룡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때를 기다렸다. 정성룡이 K리그에서 맹활약해 출전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명분을 스스로 만들길 원했다.
정성룡은 슈틸리케 감독의 바람에 부응했다. 8월 갑작스런 4주 기초군사훈련을 받긴했지만, 9월부터 수원의 주전 수문장으로 다시 활약했다. 최근 K리그 클래식 4경기에선 두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그러자 정성룡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였다. 김승규가 소속 팀의 FA컵 일정으로 인해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2차예선 원정 경기만 치르고 울산으로 복귀했다. 권순태와 정성룡만 남은 상황. 권순태가 몸살 기운을 호소하자 정성룡이 자메이카전 골키퍼 장갑을 꼈다. 무려 11개월여 만의 A매치 출전이었다.
이날 정성룡은 필드 플레이어들이 한 수 위의 경기력을 보여준 덕분에 이렇다 할 실점 상황을 맞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충실했다. 전반 19분에는 이미 오프사이드에 걸린 자메이카 공격수가 날린 헤딩 슛을 끌까지 막아냈다. 살짝 불안함도 노출했다. 후반 2분 홍정호의 백패스를 컨트롤이 길어 상대 공격수의 발에 차단당할 뻔했다. 그래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후반 16분에는 왼쪽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먼저 쳐내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3-0으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성룡은 더 크게 소리쳤다. 수비수들을 독려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묻어있었다.
상암=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