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격은 자타공인 세계 최고다. 수많은 선배들이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갈고 닦은 길은 찬란하다.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즐비한 만큼 국내에서 '총잡이'의 길을 걷기도 쉽진 않다.
경정훈련원 14기 후보생 김은지(28)가 걸어온 길은 파란만장 하다. 고교 시절까지 사격 선수로 활약하다 일반 체육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꿨고, 졸업 뒤에는 해양 스포츠 관련 기업에서 4년 간 실무를 경험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7월 14기 후보생 지원서를 내면서 다시 선수의 길로 돌아왔다.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던 김은지가 8년 만에 다시 도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격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경정으로 이루고 싶었다." 잠시 뜸을 들였던 그가 내놓은 답이다. 김은지는 "대학 졸업 뒤 근무한 회사가 해양스포츠 관련 기업이었다. 보트용 모터나 엔진을 수입하는 업무였는데, 회사에서 조종술면허시험장도 운영 중이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경정을 알게 되고 경기를 봤는데, 보는 순간 '내가 할 운동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막내딸의 결심에 부모와 쌍둥이 언니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김은지는 "사실 나부터 걱정이 앞섰다. 사격에서 이미 한 차례 좌절한 바 있어 '경정도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과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두려움이 컸다"며 "부모님이나 언니는 '다친다'고 반대했지만, 그냥 밀어붙이기로 했다"고 웃었다.
이미 경쟁을 겪어본 터라 지난 한 달간의 훈련은 고되기 보다 오히려 잠자던 아드레날린을 일깨운 시간이었다. 김은지는 "운동은 거짓이라는 게 없다. 경정은 더욱 그렇다. 남녀가 물 위에서 평등한 조건으로 싸운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라며 "운동은 몸으로 익히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만, 경정은 철저한 이론 교육부터 실기 수업까지 마쳐야 비로소 프로가 될 수 있다.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경정의 길을 택한 김은지의 목표는 '최고의 프로'가 되는 것이다.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 선배 손지영, 자신과 같은 체대생 출신의 미래 경정 여왕전 챔피언 김지현과 같은 여전사의 꿈을 품고 있다. 김은지는 "갈 길이 멀지만, 제대로 교육을 마치고 수료해 포기하지 않는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영종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