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경기 넘게 선전하던 한화가 추락하고 있다. 최근 10경기에서 2승8패다. 가장 중요한 승부처인 8월, 그것도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인 5위 다툼에서 밀리고 있다. 5위 KIA에 1.5게임차 뒤진 6위다. 한화가 마지막 생명줄을 부여잡을 수 있을까. 현재로선 가능성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로저스 영입이 없었다면 추락의 정도는 훨씬 심했을 것이다.
올해 한화는 KBO리그 최고 이슈팀이다. 꼴찌를 밥먹듯 하던 팀. 사상 처음으로 팬들이 나서 '김성근 감독을 모셔오라'고 목소리를 높여 결국 김 감독이 대전에 왔다. 마무리 훈련부터 시작된 지옥 연습, 스프링캠프엔 손에 붕대를 칭칭감은 선수들과 흙이 잔뜩 묻은 헤진 유니폼이 가득했다. 혜성처럼 나타난 권혁, 그리고 불혹 나이에 최다출전을 감행중인 박정진. 역대 최다 매진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대전구장. 급기야 한화그룹의 CF에 김성근 감독과 선수단, 팬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감동은 과정에서 나오지만 결과물이 없으면 과정을 겪지 않은 이들은 흥분하지 않는다. '땀흘린 꼴찌'가 계속 꼴찌를 하면 그건 일상으로 묻힌다. 그들이 이겼기에 스토리는 만들어진다.
올해 한화가 5위를 움켜쥐지 못한다면? 이글스가 쌓은 성과는 빛이 바래는가, 아니면 성과는 성과대로 존중되고 기억되어야 하는가.
김성근 감독에 대한 평가는 늘 극과 극을 달린다. 한화팬들에게 김성근 감독은 죽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해준 은인이다. 가마솥 더위에도 아기를 끌어안고 대전구장을 찾는 아줌마 팬, 아들과 손을 잡고 경기 시작 2시간전부터 땡볕에서 연신 부채를 부치면서도 즐거운 표정을 짓는 아저씨 팬. 하지만 한화의 패배가 거듭되면서 온라인엔 김성근 감독을 비난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큰 점수차에도 권혁을 올리며 '믿을 투수가 없다'고 말하는 노 감독에게 많은 이들은 '선수 혹사'라고 외친다. 힘들수록 더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훈련스타일도 뒤늦게 도마에 올랐다. 김성근 야구는 '가불 야구(미리 전력을 당겨써, 나중에는 부상과 부진에 빠진다는 의미)', '메뚜기 야구(가용전력을 모두 써버린 나머지 김 감독이 떠나면 황무지만 남아 향후 몇년간 부진에 빠진다는 뜻)'라는 비난도 불사한다.
타 감독들이 보는 김성근 야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선배의 스타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 누구도 '본받고 싶은 야구'라고 말하는 이가 없다. 다만 무시하는 이는 없다. 김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로 일정부분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시즌에 앞서 감독들에게 올해 한화가 성적을 낼 것이냐를 물은 적이 있다. 대부분 한화는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권혁의 혹사논란이 벌어졌던 6월에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한명을 빼고 '한화가 여름에 고비를 맞을 것'이라는 공통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A감독은 "예전과 달리 김성근 감독님이 '좀 급해지셨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부족한 선수 자원에 대한 불안감과 이제는 '야신'이기에 절대 실패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했을 지 모른다.
야구기자들에게도 김 감독은 묘한 존재다. 몇몇 기자들은 김 감독의 해박한 야구지식, 무서운 집념, 성실함과 집요함에 박수를 보낸다. 또 다른 이들은 김 감독 야구를 '구시대적 야구'라며 등을 돌리고 있다. 같은 사안에도 정반대 평가가 나올 때도 있다.
야구에서 같은 행위에 대해 다른 평가를 만들어내는 유일무이한 잣대는 성적이다. 김경문 NC감독은 최근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일본 좌투수 이와세를 맞아 좌타자 김현수를 타석에 내보낸 것을 떠올리며 "김현수가 쳤기에 감독의 묘수가 됐지, 범타로 물러났으면 상식을 깬 선수기용에 대한 욕이 돌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NC는 선전을 펼치고 있다. 하위권 팀 감독이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면 아마 '한가한 소리하고 있다'는 반응이 금방 나왔을 것이다. 팀이 이지경인데 사령탑이 선수 탓만 한다는 비난은 덤이다.
최근 한화 외국인투수 로저스는 배팅게이지에서 직접 방망이를 휘두르며 자신의 타격실력을 뽐냈다. 등판하지 않는 날에 응원단장처럼 동료들을 격려하고 분위기를 돋우는 로저스여서 그리 놀랍지 않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직전 소속팀인 뉴욕양키스에서도 이같은 일탈 행동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 로저스는 스스로 생각해도 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기에 모든 행동에 자신감이 실리는 것이다. 김 감독도 '로저스가 선을 넘진 않는다'며 묵인하는 분위기다. 퇴출된 한화 외국인타자 모건은 T세리머니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야구 못하는 모건의 세리머니는 팀내에서 '정신나간 짓'으로 치부됐다. 별스럽기로 따지면 로저스가 한 수 위인데 한화 식구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성적은 평가를 바꾸는 프리즘이다.
한화가 5위를 손에 쥐었을 경우와 반대의 경우 평가는 사뭇 다를 것이다. 한화 팬들과 나머지 야구팬들의 인식은 시작점부터 차이가 난다. 모든 변수를 걷어내도 가을야구를 하지 못하면 맥이 풀린다. 내년에 한화가 더 나은 팀으로 성장할 지는 알수 없다. 다만 한화는 올해 '올인 분위기'다. 다 던지고도 잡지 못한다면 허탈감은 그만큼 클 수 밖에 없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