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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잔디난' 광주, 고민도, 해법도 '광주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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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은 턴을 할때마다 뒤뚱뒤뚱 거렸다. 어떤 지역에서는 공에 상관없이 넘어졌다. 패스한 볼은 공은 구르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아예 다른 방향으로 튀기기도 했다.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최악의 잔디상태가 만든 촌극이었다.

23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광주와 제주가 K리그 클래식 27라운드를 치렀다. 갈길 바쁜 두 팀이었다. 광주는 3경기 무승(2무1패), 제주는 5경기 무승(1무4패)의 수렁에 빠졌다. 반전을 위해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다. 제주는 이날 승리를 위해 선수단이 짧게 머리를 자르고 나왔다. 일부 선수는 삭발을 했다. 조성환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함께 머리를 잘랐다. 조 감독은 "오늘 라커룸 분위기가 비장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광주도 오랜만에 홈팬들에게 승리를 안기기 위해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다. 패싱축구의 대명사인 두 팀의 만남에 기대치를 커졌다.

정작 양 팀의 방해한 것은 잔디였다. 정상적인 경기를 펼치기 어려울 정도의 잔디사정이었다. 멀리서 바라봐도 패인 곳이 눈에 띄었다. 잔디가 가장 푸르러야 할 8월, 논두렁 같은 잔디가 선수들을 맞이했다. 태클 한번에 잔디가 다 파이기 일수였다. 프로 경기를 치르는 경기장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광주 관계자는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이다"고 했다.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손상은 7월 열린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때문이었다. 광주월드컵경기장은 하계유니버시아드의 주경기장으로 활용됐다. 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는 광주가 지난 5월 K리그 첫 홈 경기를 치르기 전에 잔디를 새로 깔았다. 하지만 유니버시아드대회 행사로 인해 그라운드에 무대가 설치되고, 육상 필드 경기가 진행되면서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7월에 비가 많이 내린데다 고온 다습한 날씨가 이어지며 잔디 상태가 심각해졌다. 유니버시아드대회 직후 광주는 즉각적인 잔디 교체를 고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발목을 잡았다. 유니버시아드대회 후 8월13일 예정된 첫 홈경기까지 한달여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새 잔디가 뿌리내리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남기일 광주 감독은 "홈경기지만 홈경기 같지 않다. 우리처럼 패싱축구를 하는 팀 입장에서 이런 그라운드 사정은 말그대로 최악이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광주월드컵경기장 입성 후 첫 경기였던 전남전에서 부상자가 나왔다. 그 후 선수들이 부상 우려 때문에 경기를 뛰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게 미안할 정도"라고 고개를 숙였다. 조용한 조 감독조차도 광주전 후 "전국의 축구팬들이 지켜보는 경기에서 그라운드 사정이 많이 아쉬웠다. 부상자가 안나서 다행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더 답답한 것은 답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광주는 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를 통해 시즌 직후 잔디를 교체할 수 있는 비용을 확보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인근 경기장으로 옮겨 경기를 치르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없던 일이 됐다. 광주는 날씨가 선선해지는 9월 A매치 휴식기 기간에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경기 전후로 잔디를 밟아주며 관리해주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경기 외적인 부분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선수단이다. 남 감독은 "오히려 원정경기를 다녔던게 피곤했지만, 우리 축구를 마음껏 했다는 점에서 더 행복했던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니버시아드대회로 인해 원정경기를 몰아 치른 광주에 앞으로도 첩첩산중 같은 홈경기 일정이 남아있다. 계속해서 홈에서 어려운 경기를 할 경우 전반기 벌어놓은 승점을 다 까먹을 수도 있다. 남의 일 같았던 강등도 걱정해야 한다. 남 감독의 해법은 정면돌파다. 잔디사정을 고려해 롱볼 축구로의 전술 변화도 고려했지만, 남 감독은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남 감독은 "마음이 복잡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우리의 색깔을 버릴 수는 없다. 승점을 위해 변화도 줘야 한다. 그래도 우리의 축구를 하고 싶다. 점유율 높이면서 패싱플레이를 하고싶다"며 "광주 스타일은 계속된다. 2부로 내려가는 한이 있어도 계속해서 할 것이다. 체력이 남아 있는 한 광주의 색깔을 내고 싶다. 광주만의 축구를 계속해서 밀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