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감일까, 우연일까. 지난 6일 데뷔전에서 완투승을 거둔 한화 외국인투수 에스밀 로저스(29)는 요즘 TV 중계화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선수다. 덕아웃에 설치된 카메라 바로 옆에서 화려한 몸짓으로 팀을 응원하고 있다. 덕아웃 맨끝자리에 위치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비칠 일이 많지만 워낙 역동적인 몸동작을 보여주기 때문에 카메라도 로저스를 주목할 수 밖에 없다. 7일 경기와 8일 경기에서는 응원단장으로 변신해 동료들의 파이팅을 돋우었다.
로저스는 곧바로 팀 분위기에 녹아드는 모습이다. 지난 2일 한국에 도착했는데 시차적응이 덜된 상태지만 나흘만에 선발등판을 했다. 한화 벤치는 당시 7이닝 정도를 염두에 뒀는데 본인이 8회와 9회 등판을 자원했다. 오자마자 팀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묻고 충실히 지시에 따르겠다는 말을 해 김성근 한화 감독을 놀라게 만들었다. 김 감독은 "역시 뉴욕양키스가 명문팀인 것 같다. 새로운 팀으로 옮겼을 때 취할 선수의 기본자세 등도 배운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선수의 인성을 떠나 야구를 대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인상깊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한화 강경학은 "호수비를 하고 들어오면 하이파이브를 하고, 박수를 보내고 웃으며 맞이한다. 서른 살이라고 해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노안으로 보인다는 우스갯소리) 역시 젊기에 볼도 좋고, 활달한 것 같다"고 했다.
로저스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뉴욕양키스에서 불펜투수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온 선수는 많지만 그해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에 들었다고 온 선수는 최고 수준으로 봐야한다. 자칫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 있지만 로저스는 한화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덕아웃에서 배팅 헬멧을 쓰고, 방망이를 휘두르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매순간 일어서 환호성을 지르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에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로저스는 오자마자 3경기만에 한화 야구의 진수를 경험했다. 6일 자신이 완투승을 거둔 날에는 화려한 치어리더의 율동과 뜨거운 파도타기, 쉴새없이 외쳐대는 '최·강·한·화' 배치기 응원을 목격했다. 7일에는 선발투수가 4회에 곧바로 교체되고, 매이닝 투수가 바뀌고, 1점을 주고, 1점을 따라가고, 결국은 연장승부로 이어지는 '질퍽한 한화야구'도 봤다. 사실 로저스의 머릿속에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거'에겐 낯선 풍경이었음은 분명하다. 8일에는 7회까지 답답함이 이어지다가 7회말과 8회말에 대폭발하는 '2015년 달라진 한화 야구'도 목격했다. 그 이틀 동안 로저스는 변함없는 '덕아웃 응원단장'이었다. 연장승부가 많고, 경기시간이 길고, 부상 선수가 많은 한화. 더 힘겨운 8월이지만 로저스는 기둥선발이라는 역할 외에 또다른 형태로 힘을 보태고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