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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엄정화 "끝없는 갈망의 이유? 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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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배우 엄정화는 늘 한발 빨랐다. 그가 선택한 여성 캐릭터는 도발적이었지만 이내 곧 현실이 됐다. 영화를 통해 동시대 여성들을 대변해 온 셈. 사회적 통념에 구애받지 않는 싱글녀로 누구보다 당당했고(싱글즈), 결혼 제도에 대한 도발적 질문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결혼은 미친 짓이다), 중년 여성의 나이듦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이야기했다(관능의 법칙). 그래서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엄정화의 한발 앞선 행보에 시대의 변화가 발을 맞춰 따라온 듯한 인상을 받는다. 가요계와 영화계를 넘나들며 수많은 여자 후배들로부터 롤모델로 꼽히는 이유일 테다.

엄정화가 그려온 여성의 삶엔 '모성'도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한다. 영화 '오로라공주', '베스트셀러', '해운대', '몽타주' 등에서 엄마를 연기했다. 개봉을 앞둔 19번째 주연 영화 '미쓰 와이프'에서도 엄마의 삶을 경험한다. 이전 출연작이 모성의 붕괴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모성을 구축해가는 이야기란 차이점이 있다.

'미쓰 와이프'는 잘 나가는 싱글 변호사 연우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영혼이 뒤바뀌어, 한 달간 두 아이의 엄마이자 구청 공무원의 아내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코믹한 소동극을 그린다. 엄정화가 그동안 연기로 표현해온 당당한 싱글녀와 모성이란 여성의 두 가지 삶을 한 캐릭터 안에 품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초부터 엄정화가 아닌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눈만 뜨면 밥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과 '쓸데없이 잘생긴' 애처가 남편(송승헌)을 거부하던 연우는 점차 평범한 가족의 삶에 동화돼 가고 생애 처음 따스함을 느낀다. 엄정화는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으로 성공만을 바라보며 살던 여자가 한 가족을 만나 녹아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는 골드 미스지만 엄정화는 작품 안에서 엄마의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배우에게 엄마 역할이 주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했다. 나아가 "반가웠다"고도 했다. 두 아역배우와 함께 어울리는 촬영장은 너무나 즐거웠고, 행복이 묻어난 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도 흐뭇하다. 엄정화는 "네 가족이 하나의 화면 안에 함께 있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언젠가는 엄정화의 삶에 찾아올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나 내 편인 남편과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들, 그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엄청난 행운 같아요. 제게도 언제나 1순위는 엄마였거든요."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 연우는 어린 시절 상처로 남은 아빠의 숨겨진 사랑을 깨닫는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욕심냈던 장면이다.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분명히 아버지가 저를 지켜주고 계실 거라 생각했어요. 힘들 때마다 의지했던 아빠의 모습이 이 영화에 담겨 있어서, 더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엄정화의 눈빛이 살짝 아련해진다.

엄정화는 언제나 '마음을 툭 건드리는' 영화를 선택해 왔다. 동시대 여성의 이야기를 해온 것도 '엄정화는 그래야 한다'는 책임감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간 결과다. 그렇지만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 같은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 건 책임감이 따른다. 그래서 "지금 무지무지 떨린다"고 말하는 그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영화 속 엄정화의 모습이 반갑다. 앞으로도 "생활감 있는 영화, 진득하게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엄정화라는 배우가 어떻게 진화해갈지 점점 기대감이 커진다.

마지막으로, 연기에 대한 끝임 없는 갈망의 이유를 물었다. 명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배우니까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