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여 년전 중원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맞붙었던 세 나라의 이야기가 프로야구판에 재현된 느낌이다. 위나라와 촉나라, 그리고 오나라 사이에 펼쳐진 흥망성쇠의 역사를 담은 '삼국지'. 프로야구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세 팀의 경쟁이 한창 달아올랐다. '중원의 패권'이 목표가 아니라 '5위 탈환'이 목표다. 포스트시즌 진출의 마지노선인 '5위 자리'를 따내기 위해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의 막판 경쟁이 뜨겁다. 세 팀의 현재 전력 상황과 향후 일정을 토대로 '야구 삼국지'의 판도를 전망해본다. 물론 이 전망은 최근 일주일간의 경기 기록을 토대로 한 것이다. 때문에 세 팀의 향후 행보와 운명은 전망과 충분히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팀별 분위기(KIA>SK>한화)
프로야구에서는 수치화 된 전력 이외의 비정량적 전력도 대단히 중요하다. 흔히 '기세'라고 표현되는데 팀 전체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도, 떨어트릴 수도 있다는 면에서는 '팀 케미스트리'와도 흡사하다. 어쨌든 일선 지도자들은 상대와 맞붙을 때 기세를 잃지 않기위해 집중한다. 이런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현재 팀 분위기 또는 기세가 가장 강력한 팀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바로 'KIA'다. 지난주 SK와 한화 등 5위 싸움 경쟁자들을 연파하며 6연승을 대달렸다. 결국 이 6연승 이전에 5할 승률 마진에서 '-6승'으로 7위에 머물러있던 KIA는 이제 5할 승률을 회복하며 6위로 올라섰다. 더구나 5위와의 격차도 불과 0.5경기 차이다. 이번주 결과에 따라 5위 회복의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는 SK를 들 수 있다. SK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주중 광주원정 3연전에서 KIA에 스윕패를 당하면서 순식간에 팀 분위기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 그로기 상태에서 몇 방을 더 맞았다면은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SK는 다행히 주중 3연패의 데미지를 그나마 LG 트윈스와의 주말 홈3연전에서 만회할 수 있었다. 비록 스윕승리는 아니지만, LG를 상대로 2승1패로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일단은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기반은 마련했다.
세 팀 중에 팀 분위기 면에서 최악은 현재로서는 한화 이글스다. 변수에 발목이 잡혔다. 바로 선수들의 집단 부상 현상이다. 전반기 막판에 선발 안영명과 쉐인 유먼이 아파서 1군 엔트리에 제외됐고 결국 유먼은 퇴출이 결정됐다. 이보다 더 큰 악재는 바로 팀 전력의 핵심인 '리드오프' 이용규의 부상이다. 이용규는 지난 7월31일 대전 KIA전 때 상대 선발 박정수가 던진 공에 좌익수 쪽을 맞았다. 결과는 근육파열. 재활에 최소 4주나 걸린다. 빠른 치료를 위해 3일 오전 일본 요코하마로 보냈지만, 치료 기간 단축 여부는 확신하기 어렵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한화는 지금 개막 후 최악의 전력이라는 것이다.
▶투수력(KIA>SK>한화)
투수력 측면에서도 현재 가장 앞서있는 팀은 단연 KIA다. 6연승을 달성한 지난 1주일만 놓고 봤을 때 다른 두 팀은 상대가 안된다. 이 기간 KIA의 팀 평균자책점은 4.00이었다. 삼성 라이온즈(3.91)에 이어 10개 구단 전체 2위다.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는 1.48로 상대적으로 야간 높은 편이었지만, 장타를 맞진 않았다. 피장타율이 겨우 0.376으로 같은 기간 10개 구단 중 가장 낮았다. 홈런도 5개 밖에 내주지 않았다. KIA 투수진의 안정세의 원인으로는 에이스 양현종 외에 임준혁, 박정수 등 선발 뉴 페이스들의 약진을 들 수 있다. 게다가 외국인 투수 에반이 빼어난 구위를 앞세워 중간계투로 나와 알찬 활약을 해준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두 번째는 SK다. 사실 SK는 시즌 전체로 따져보면 이들 세 팀 가운데 투수력이 가장 안정돼 있고, 강한 팀이다. 시즌 전체 팀 평균자책점이 4.43으로 가장 좋다. KIA는 4.65이고 한화는 4.93이나 됐다. 그런데 이런 수치를 최근 일주일로 좁혀보면 SK가 한화는 앞서도 KIA에는 밀렸다. 가장 큰 이유는 믿었던 필승 마무리의 붕괴 때문. 윤길현과 정우람이 3경기 연속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뒤를 버틸 만한 카드가 사라진 셈이다. 이런 현상을 극복해내지 못할 경우 SK는 크나큰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투수력에서도 한화는 가장 불리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외국인 선발이 한 명 밖에 없다는 건 엄청난 손해다. 그나마 지난 2일 새 외국인 투수 로저스가 팀에 합류한 게 플러스 요인이 될 전망이다. 어쨌든 한화는 5인선발 운용자체가 어려웠던 팀이다. 로저스가 스카우팅 리포트나 경기 영상만큼의 구위를 보여준다면 '대박'이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도 선발 로테이션만 지켜주면 일단 한화로서는 '땡큐'인 셈. 투수진의 과부하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하지만 박정진-권 혁-윤규진의 구위 저하 현상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타력(KIA>SK>한화)
기록으로 나타난 수치만으로 평가했다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일부러 KIA의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최근의 타격 페이스는 KIA가 가장 높았다. 팀 분위기와 투수력에 이어 타력에서도 KIA가 가장 앞서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KIA는 팀 타율이 3할을 넘겼다. 3할3리였다. 게다가 출루율도 3할8푼5리였다. 10개 구단 중 4위에 해당한다. 홈런은 무려 8개나 쳤다. 괄목할 만한 점은 상하위 타선의 조화다. 상위 타선에서 신종길 김주찬 이범호 브렛 필은 여전히 제몫을 다 해줬다. 그런데 이제는 하위 타선에서도 터진다. 이홍구나 백용환 같은 기대주들의 타격이 한층 일취월장하며 팀 타선에 강력한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것.
두 번째도 역시 SK였다. SK는 주간 팀 타율 2할9푼6리로 전체 5위였다. KIA에는 뒤지지만, 한화보다는 좋았다. 홈런도 8개를 쳐 장타율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역시 SK의 이같은 타격 상승세 원동력은 '올드보이'들의 귀환에 있다. 2000년대 후반 김성근 감독과 함께 SK 와이번스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박정권, 최 정, 정상호 등이 타선에서 맹활약했다. 박정권은 최근 5경기 타율이 4할에 달한다. 홈런도 3개나 날려댔다. 여기에 김성현의 활약도 팀 타선에 윤활제가 되고 있다.
한화는 역시 이용규의 부상 공백이 뼈아프다. 리드오프로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이용규다. 부상 이전까지 89경기에서 3할3푼7리(팀내 1위)에 120안타 3홈런 33타점 79득점 23도루로 맹활약해왔다. 한 마디로 '대체불가'선수였다. 그런 이용규의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한화의 '5위 전쟁'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초대형 악재가 있었지만, 한화 타선에는 호재도 있었다. 바로 김경언의 귀환이다. 역시 종아리 근육 파열 부상을 당했던 김경언은 복귀 이후 금세 뜨거운 타격감을 되찾았다. 최근에는 다시 중심타선에 포진돼 적시타를 수시로 쳐낸다. 지난 한 주간 김경언의 타율은 무려 4할5푼5리였다. 8타점을 쓸어담아 팀내 1위에 올랐다. 더불어 조인성 역시 타격감이 좋다. 옆구리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이후 스윙이 한층 빨라지고 힘이 실린 덕이다. 그나마 이 두 명의 활약이 가뭄의 단비처럼 한화에 힘이 되고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