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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월드컵]사상 첫16강,투혼으로 쓴 반전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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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스페인에 2-1로 앞서던 후반 인저리타임,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스페인 소니아 베르뮤데스의 프리킥이 선언됐다. 태극낭자들은 어깨를 겯고 촘촘히 붙어섰다. 눈을 부릅뜬 채, 결코 피하지 않았다. 서로를 향해 외쳤다. "절대 못 넣어. 한발짝도 움직이지 마!" 베르뮤데스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동시에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태극낭자들이 두손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했다.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벤치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대~한민국!" 함성이 울려퍼졌다. '오타와 미라클'이었다. 여자축구의 오랜 꿈이 마침내 이뤄졌다. 여자월드컵 도전 12년만에 사상 첫승, 첫 16강행의 역사를 썼다. 2015년 6월 18일, 캐나다 오타와는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성지가 됐다.

한국은 18일 오전 8시(한국시각) 캐나다 오타와 랜스다운스타디움에서 펼쳐진 국제축구연맹(FIFA) 캐나다여자월드컵 E조 조별리그 3차전 스페인전에서 2대1로 역전승했다. 전반 29분 캡틴 베로니카 보케테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8분 조소현의 필사적인 헤딩 동점골이 터졌다. 후반 33분 김수연의 오른발 역전골까지 작렬하며 월드컵 사상 첫 승리와 함께 브라질(승점6)에 이어 1승1무1패(승점 4), 조 2위로 16강의 꿈을 이뤘다.

▶전반전 0-1: 이겨야 사는 '벼랑끝 승부'

E조 4위 한국과 3위 스페인의 맞대결은 '벼랑끝 승부'였다. 1-2차전에서 나란히 1무1패(승점1)를 기록했다. 1위 브라질이 2연승으로 16강에 선착한 가운데 브라질전을 앞둔 코스타리카(2무, 승점2), 한국, 스페인은 '예측불허' 3파전을 벌였다. 한국은 무조건 이겨야 사는 게임이었다. 한국이 이기고, 코스타리카가 지거나 비길 경우 조 2위로 16강행, 한국이 지거나 비길 경우 16강 꿈이 사라지는 '외나무 혈투'에서 태극낭자들은 기적같은 투혼을 발휘했다.

4-2-3-1 포지션에서 박은선(29·로시얀카)가 '원톱'으로 나섰다. 2003년 미국대회 이후 12년만에 꿈의 무대를 밟았다. 강유미(25·화천KSPO) 지소연(24·첼시레이디스) 전가을(27·현대제철)이 공격라인에 포진했다. 권하늘(27·부산 상무), 조소현(27·현대제철) 콤비가 더블 볼란치로 나서고, 이은미(27) 황보람(28) 심서연(26·이상 이천대교) 김혜리(25·현대제철)가 포백라인에 섰다. '맏언니' 김정미(31·현대제철)가 골키퍼 장갑을 꼈다.

한국은 1차전 브라질에 0대2로 패했다. 2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선 다잡은 첫승을 놓쳤다. 지소연, 전가을의 연속골에 힘입어 2-1로 앞서다 후반 44분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했다. 스페인전과의 최종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뛰겠다"고 했다. 양쪽 발목이 성치않은 박은선이 테이핑을 하고 결전에 나섰다. 지난 2경기에서 부진했던 '에이스' 지소연은 "욕심을 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초반 스페인의 공세가 거셌다. 전반 2분, 마르타 코레데라의 첫 슈팅이 골대 왼쪽을 살짝 벗어났다. 알렉시스 푸테야스의 크로스에 이은 파블로스의 슈팅이 빗나갔다. 한국은 전반 30분까지 단 한번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전반 15분 지소연이 수비수 3명을 벗겨내며 질풍 드리블을 보여준 것이 가장 돋보인 장면이었다. 전반 16분 코레데라의 슈팅을 센터백 황보람이 온몸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전반 잇단 위기를 넘지 못했다. 전반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던 코레데라가 결국 실점의 시발점이 됐다. 전반 29분 코레데라가 문전 왼쪽에서 올린 왼발 크로스를 베로니카 보케테가 왼발로 해결했다. 가장 경계했던 선수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 해결사로 나섰다. 전반 32분 나탈리아 파블로스의 슈팅을 김정미가 두손으로 쳐내며 또 한번의 실점 위기를 막아냈다. 발목 부상을 참으며 경기에 나선 박은선은 투혼을 발휘했지만, 몸이 무거웠다. 코스타리카전에서 맹활약했던 측면의 강유미도 주춤했다. 전가을과 좌우를 바꾸며 변화를 꾀했지만 전반을 0-1로 뒤진 채 끝냈다. 미드필드 싸움에서 고전하고, 측면 공격까지 막히며 활로를 찾지 못했다. 스페인이 8개의 슈팅, 2개의 유효슈팅, 1골을 기록한 반면 한국은 슈팅 2개, 유효슈팅 0개에 그쳤다.

▶후반전 2-1: 투혼으로 쓴 '16강 반전 드라마'

하프타임 라커룸에서 윤덕여 감독은 "그동안 준비한 것, 고생한 것을 생각해봐라. 우리,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해보자"고 했다. 후반 거짓말처럼 반전이 시작됐다. 윤 감독은 측면에 승부수를 던졌다. 많이 뛴 오른쪽 수비수 김혜리 대신 '공격수 출신 윙백' 김수연(26·화천KSPO)을 투입했다. '신의 한수'였다. 한국의 공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후반 8분 지소연이 중원에서 몸싸움을 이겨내며 오른쪽 날개 강유미를 향해 영리한 공간패스를 찔러넣었다. 강유미의 날선 크로스와 함께 조소현이 튀어올랐다. 짜릿한 헤딩 동점골이 작렬했다. 후반 19분 코레데라의 결정적 슈팅을 김정미 골키퍼가 두손으로 막아냈다. 한국은 끊임없이 역전골을 노렸다. 윤 감독은 지친 선수들을 향해 "좀 더하자! 좀 더하자!"라며 박수를 치며 독려했다. 후반 28분 파블로스에게 이어진 문전 패스를 황보람이 막아섰다. 수비라인이 투혼을 발휘했다. 16강행을 위해 승리가 필요한 스페인 역시 막판까지 강하게 밀어붙였다. 윤 감독의 선택이 적중했다. 후반 33분 교체 투입된 김수연이 짜릿한 역전골을 꽂았다. 박스 오른쪽에서 쏘아올린 크로스 같은 슈팅이 골망 구석으로 쏙 빨려들었다. 대한민국의 16강행을 이끈 '기적의 한방'이었다. 지소연은 "'이 골이 들어간 순간 이길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코스타리카전 막판 실점한 태극낭자들에게 2번의 실수는 없었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2대1 승리, 휘슬이 울리는 순간, 태극낭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12년전, 막내로 첫 월드컵에 나섰던 '맏언니 수문장' 김정미와 박은선이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2003년 미국여자월드컵, 첫 도전은 3번의 시련이었다. 조별리그 첫경기인 브라질전에서 0대3으로 완패한 후 프랑스(0대1패) 노르웨이(1대7패)에 연패했다. '17세 막내'로 이 대회에 나섰던 '골잡이' 박은선은 "얼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김)진희 언니가 골 넣었던 기억, 내가 엄청 골을 퍼내던 기억만 난다"고 했었다. 당시 골문을 지켰던 김정미는 "12년전엔 정말 바보같았다. 월드컵 2번만에 16강에 올라가다니, 동생들이 첫 월드컵에서 정말 잘해줬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12년만에 대한민국 여자축구는 눈부신 성장세를 세계 무대에 입증했다. 12년 전과는 분명 달랐다. 거침없는 패기와 열정, 감동적인 투혼으로 12년만의 월드컵에서 값진 첫승, 새 역사를 썼다. 극적인 16강 '반전 드라마'를 쓴 윤덕여호는 19일 다시 몬트리올로 돌아간다. 22일 오전 5시(한국시각) 몬트리올올림픽경기장에서 F조 1위 프랑스와 8강행을 다투게 됐다.

태극낭자들이 월드컵 두번째 도전, 12년만에 짜릿한 첫승의 역사를 썼다. "대~한민국" 함성이 뜨겁게 울려퍼졌다. "우리 선수들의 땀과 눈물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던 윤덕여 감독의 말은 현실이 됐다. 2만1562명의 관중이 이날 한국의 기적을 목도했다. 오타와 시민들도 "레츠고! 코리아!"를 외쳤다. 오타와(캐나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