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돌풍을 이어나가지 못한게 가장 아쉽죠,"
조진호 대전 감독이 자진사퇴했다. 조 감독은 전득배 사장과의 미팅을 통해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했다. 대전은 올시즌 K리그 클래식 개막 후 치른 11경기에서 단 1승(2무8패)만 하는 극심한 부진으로 최하위에 머물러있다. 이로써 조 감독은 2013년 10월 김인완 전 감독의 건강 이상으로 감독 대행에 오른 이래 1년7월만에 대전에서 물러나게 됐다. 조 감독은 "지금이 아니면 회복의 기회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팀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고 했다.
대전은 올시즌을 앞두고 많은 기대를 모았다. 지난시즌 K리그 챌린지에서의 돌풍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당초 대전은 유력한 승격 후보는 아니었지만 외국인선수와 임대생들의 활약, 그리고 조 감독의 지도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챌린지를 정복했다. 빠른 공격축구를 표방한 조 감독식 축구는 많은 호평을 받았다. 조 감독은 팬들에게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전은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으며 승격에 성공했다. 조 감독도 감독대행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하지만 클래식 승격 후 모든 것이 꼬였다. 일단 선수영입부터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당초 즉시 전력감으로 영입을 노렸던 골키퍼 김다솔과 레프트백 박희성이 메디컬테스트에서 탈락했다. 안현식의 경우 팬들의 반대로 사인 후 영입 취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과거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을 수비의 핵심으로 삼으려 했던 조 감독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외국인선수 영입이 늦어진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지난시즌 챌린지 득점왕에 오르며 대전 공격의 절반이었던 아드리아노의 재계약에 난항을 겪으며 외국인선수 영입 계획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아드리아노를 다시 데려오는데 성공했지만, 시즌이 임박해서였다. 다른 외국인선수들도 그 즈음 영입을 완료했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자마저 속출하며 제대로 된 동계훈련을 하지 못했다. 조 감독은 "지난시즌을 함께 한 좋은 선수들과 시즌을 준비했다면 분위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에 못지 않은 선수들로 스쿼드를 새로 꾸릴려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원했던 베스트11으로 한경기라도 치러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클래식에서도 공격축구로 승부를 보고 싶었던 조 감독의 계획은 초반부터 흔들렸다. 아드리아노의 컨디션 저하와 기존 선수들의 클래식 적응 부재 등으로 득점에 실패했다. 수비도 흔들렸다. 조 감독은 빠른 결단으로 스리백, 선수비 후역습 카드 등을 꺼내들며 팀을 추스렸다. 조 감독의 용병술은 먹혀들어갔지만, 기대했던 큰 반등은 없었다. 결국 조 감독은 자진 사퇴를 택했다. 조 감독은 "작년에 대전이 보여준 모습을 반도 보여주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이 가장 아쉽다. 물론 하고 싶은 말들도 많다. 하지만 가슴에 묻겠다. 대전이 꼭 잔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 감독은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1994년부터 8년 동안 프로선수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코치, 수석코치, 2번의 감독대행, 감독으로 23년간 K리그에서 쉼없이 보내왔다. 쉬는 동안 공부를 하며 지도자 복귀를 위한 준비를 할 계획이다. 그는 "대전에서의 경험이 지도자 생활의 큰 약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번에는 클래식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한편, 대전은 당분간 수석코치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다음경기가 30일 포항전으로 예정돼 있는만큼 감독선임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있다. 여러 후보들을 접촉해 대전을 살릴 수 있는 최상의 감독을 선임할 계획이다. 참신한 인사들이 이미 후보군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