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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모델 이영진의 패션人]이혜정, 농구선수에서 존 갈리아노의 뮤즈가 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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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K-무비, K-팝에 이어 이제 전 세계가 K-패션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모델은 물론, 디자이너들의 팬덤이 형성되는 등, 패션을 바라보는 시선은 들떠있다. 화려함만큼이나 치열함이 공존하고, 창의력만큼이나 지구력도 요하는 세상이 패션계다. 패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스포츠조선은 톱모델 겸 배우 이영진과 마주 앉았다. 2015년 '떡국열차'를 시작으로 또 다른 자신을 내어놓는 것에 주저 없는 이영진이 그의 패션인을 더 넓은 세계로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세 번째 주자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모델 이혜정이다.



▶'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세 번째 인터뷰, 이혜정

패션계 인종차별주의자로 유명한 존 갈리아노의 쇼에 서는 한국인 모델. 이영진이 선명하게 기억하는 후배 모델 이혜정의 첫인상이다. 매스컴이 일제히 그를 주목하며 존 갈리아노의 뮤즈로 소개하기 시작했던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러나 그 때만 하더라도 이혜정이 농구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측근들 밖에 몰랐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는 이혜정이지만, 한 때는 숨기고 싶은 과거였다고 한다. 철이 들기도 전에 시작한 운동은 몸 곳곳 흔적을 남겼고, 선수에서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배 이영진은 인터뷰 내내 따듯한 칭찬으로 이혜정을 감싸 안았다.



이영진(이하 이)-농구선수로 살다가 모델이 된 과정이 궁금해요.

▶이혜정(이하 혜): 운동을 그만두면서 여자로서 평소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을 누려보고 싶었어요. 스물두 살 때 처음으로 머리도 길러봤죠. 그 전에는 다 숏커트였어요. 치마도 입고 구두도 신어보고 메이크업도 해봤죠. 그렇게 살다 살이 빠지면서 모델 제의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그 시절이 연예인 시켜준다며 사기 치는 경우가 많았던 때라 다 거절하고 제가 먼저 슈퍼모델에 이력서를 내봤죠. 경력사항을 쓰라고 해 전국체전 우승, 국가대표, 우리은행 입단 이런 것을 막 적었어요. 당연히 떨어졌죠(웃음). 그러가 모델라인에 들어갔고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이-어쩌면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 듣기 싫은 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남성성을 드러내야만 하는 스포츠 선수의 이력과 여성성의 극대화인 모델, 양극성을 다 가진 것은 이혜정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을 했기에 생긴 근성도 지금의 이혜정을 만든 것 중 하나죠. 실제 본인 생각에는 운동선수로서의 이력이 모델 일을 하는데 있어 도움이 된 부분이 있나요.

▶혜:처음에는 너무 싫었어요. 운동했다는 이유 만으로 자세가 구부정했죠. 내가 농구를 왜 했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나의 깡과 끈기는 모두 운동 때문에 생긴 것이더라고요. 12년 동안이나 여성성을 숨기고 살아왔던 것도 모델일을 하면서 오히려 플러스가 됐어요. 한꺼번에 막 분출하니 말이죠(웃음).



이-지금은 깡마른 체형의 모델이 중심인 시대지만, 조만간 90년대 슈퍼모델들 처럼 근육이 예쁜 모델들이 사랑받는 시대가 올 것 같은 조짐이 요즘 보여요. 그렇게 된다면 이혜정에게는 제2의 전성기가 될 것 같은데요.

▶혜: 촬영 때문에 파리에 갔는데 운좋게 베르사체 꾸띄르를 봤어요. 나오미 캠벨과 그 윗 세대 모델들이 무대에 섰는데, 전율이 느껴지더라고요. 눈물까지 날 뻔 했어요. 반면, 깡마른 모델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이-이제 막 데뷔하는 후배들이 다이어트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옛날이 그립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시절 멋있었던 모델들은 안 잊혀져요. 신디 크로프트, 린다 에반젤리스타 같은 모델들의 몸과 근육, 다리 비율 등. 아우라가 굉장했죠. 그런 아우라는 아무래도 깡 마른 몸에서는 나오기 힘들죠. 이제는 모델 생명도 더 길어졌으니 근육이 잡힌 몸은 장점이 될 것 같아요.

▶혜:제2의 전성기가 꼭 오길 바랍니다(웃음).



이-해외진출 이야기를 해보죠. 어떻게 한국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나요.

▶혜:첫 소속사에 여러 사건들이 있어 그 김에 한중일 대회에서 만난 친구와의 인연으로 홍콩으로 떠났어요. 원래 계획은 2개월이었는데 1년이 됐죠. 그 시절 에스팀에서 연락이 와서 계약을 하게 됐고, 계약하자마자 뉴욕에 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송경아, 한혜진 선배가 나가 있을 때이긴 하지만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나이가 많아 소속사에서는 반대를 했어요. 당장은 소속사 말을 듣고 열심히 잡지를 찍었죠. 그러다 3년 뒤에 뉴욕 에이전시에서 동양인 1명을 데려가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회사 반대를 무릅쓰고 나갔죠.



이-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혜:쇼에는 많이 섰지만 큰 쇼가 없었어요. 그 때 에이전시가 오디션 제의조차 안 오는 작은 회사였기 때문이죠. 무작정 파리로 갔어요. 운이 좋아 크리스찬 디올, 루이비통 무대에 다 서고 뉴욕으로 돌아왔는데 이혜정이라는 모델의 존재감이 없더라고요. 결국 3000만원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그 에이전시에서 나오게 됐죠. 그런데 에이전시가 한 시즌 활동을 못하게 해버리더군요. 매번 찾아가 사정하는 시간도 필요했어요.



이-이혜정이라는 모델을 알게 된 때가 존 갈리아노 무대에 서는 한국 모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요. 물음표가 컸던 모델이었죠.

▶혜:악착 같았어요. 잠을 3시간을 자면서 오디션을 하루에 스무 개 이상 씩 봤죠. 크리스찬 디올 오디션을 갔을 때도 번호표 100번을 받고 다른 쇼에 갔다 다시 왔어요. 100번 부르고 나갈 때 이미 지쳐있고 아무 생각이 안 날 지경이 됐어요. 워킹을 하는데 몸이 비틀어지길래 앞에 있는 조니 뎁을 닮은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쏘리'하고 말했어요. 그 남자가 귀엽다고 말하며 뭔가를 체크하더라고요.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존 갈리아노였어요. 에이전시에 가서 '존 갈리아노가 나한테 귀엽다고 했어'라고 말했더니 콧방귀를 뀌길래 기대를 안했는데, 나중에 전화가 왔죠. 그 때가 정말 엊그제 같네요.



이-그렇게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준 힘은 무엇인가요?

▶혜:아주 작은 희망 때문이었어요. 뉴욕에서 처음 본 오디션이 지금은 쇼를 하지 않는 어느 거장 브랜드의 쇼 오디션이었는데, 합격을 해 피날레와 오프닝도 했어요. 그러니 희망이 보이더라고요. 또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어요.

이-'운이 좋다'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노력의 양이 컸네요. 맨 땅에 헤딩으로 이뤄낸 성과였어요.

▶혜:지금 후배들이 외국 가고 싶다고 하면 그냥 가라고 말해줘요. 모델 일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얻는 것은 분명 있을테니 말이에요. 저의 경우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 더 많은 깡이나 대범함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뉴욕도 다 인맥이에요. 미국이라고 해서 평등한 나라는 아니더라고요(웃음).



이-그 시절과 달리, 지금 세계 시장에서 K-패션과 뷰티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요.

▶혜:굉장해요. 모델 쪽 한류가 커지기 이전에 밀라노에 갔는데 돔 광장에서 사람들이 강남 스타일 춤을 추더라고요. 피렌체에서도 TV 속 뮤직 비디오에 싸이가 나오던데, 그 이후 시즌부터 모델계에도 한류 붐이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중국의 힘은 여전히 커요. 뉴욕만 하더라도 클라이언트 60%가 중국인이니까요. 주요 브랜드들이 컬렉션 이후에 중국에서 또 쇼를 하는데, 쇼를 더 크게 하더라고요. 일본 역시 여전히 일본이고요. 다만, 과거에는 한국이 많이 뒤쳐졌다면 이제는 동등한 수준으로 올라왔죠.



이-국내에서도 변화가 있어요.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명품만을 무조건 선호하지 않잖아요. 로컬 디자이너들이 많이 성장했고요.

▶혜:로컬 디자이너들의 성장은 정말 확연히 느껴져요. 파리나 뉴욕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이 쇼를 하면 외국 모델들이 옷 예쁘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기분도 좋아져요.



이-모델들이 영화나 드라마, CF 예능에 많이 나오면서 모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모델이 입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옷에도 관심이 많아진 측면도 있어요.

▶혜:그러다보니 요즘은 비모델 출신 스타들도 국내 디자이너들의 옷을 많이 입더라고요.



이-참, 그러고보니 예능에 진출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혜:예전에 케이블 토크쇼에 출연해 농구선수 출신이라고 말했던 것을 있는 것을 KBS2 '우리동네 예체능' 제작진이 알게 됐고 그게 잘 맞아떨어져 출연하게 됐어요.



이-예능에까지 진출하게 된 지금, 모델 본업 외에 또 다른 분야로 확장하고 싶은 것은요?

▶혜:운동도 그렇고 모델일도 그렇고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것보다 하다보니 목표가 생기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방송이나 강의 등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있어요.



이-무서운 선생님일 것 같은데요(웃음).

▶혜:부족한 점이 많지만 스스로의 앞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앞길을 말해줄까요. 그래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그래야 미련 없이 그만둘 수도 있으니까. 해보지 않은 것도 많은 인생이에요. 그래서 더 찾아보고 있어요.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