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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모델 이영진의 패션人]이혜정, 농구선수에서 모델로 제2의 인생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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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K-무비, K-팝에 이어 이제 전 세계가 K-패션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모델은 물론, 디자이너들의 팬덤이 형성되는 등 패션을 바라보는 시선은 들떠있다. 화려함만큼이나 치열함이 공존하고, 창의력만큼이나 지구력도 요하는 세상이 패션계다. 패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스포츠조선은 톱모델 겸 배우 이영진과 마주 앉았다. 2015년 '떡국열차'를 시작으로 또 다른 자신을 내어놓는 것에 주저 없는 이영진이 그의 패션인을 더 넓은 세계로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세 번째 주자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모델 이혜정이다.



▶'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세 번째 인터뷰, 이혜정

패션계 인종차별주의자로 유명한 존 갈리아노의 쇼에 서는 한국인 모델. 이영진이 선명하게 기억하는 후배 모델 이혜정의 첫 인상이다. 매스컴이 일제히 그를 주목하며 존 갈리아노의 뮤즈로 소개하기 시작했던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러나 그 때만 하더라도 이혜정이 농구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측근 밖에 몰랐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는 이혜정이지만 한 때는 숨기고 싶은 과거였다고 한다. 철이 들기도 전에 시작한 운동은 몸 곳곳 흔적을 남겼고, 선수에서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배 이영진은 인터뷰 내내 따듯한 칭찬으로 이혜정을 감싸안았다.



이영진(이하 이)-패션고사에 90년대를 풍미한 슈퍼모델과 관련된 문제가 나왔어요.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서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혜정(이하 혜)- 사실 90년대 세계적 톱모델들은 잘 몰라요. 하지만 운동하면서 늘 시간이 나면 신디 더 퍼키 같은 잡지 책을 보는 등 패션에 늘 관심은 있었죠. 모델을 시작하고 나서는 또 온전히 제 일에 빠져있어서 외국 모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해외 활동하면서 점점 알게 됐어요. 사실 다 선배들이니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운동한 버릇이 나오네요(웃음). 뭐랄까. 운동하는 사람들 특유의 탄탄한 선후배 개념이 장착돼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보통은 그렇게까지 선배를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 알아주면 고마운 마음은 있지만 나 역시 패션 쪽은 그런 위계질서 부분에서 좀 오픈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혜-과거에는 모델계 위계질서가 지금보다 더 엄격했던 것 같아요. 늘 경력 순이니 늦게 데뷔한 제가 가장 막내였고 선배들은 저보다 어렸죠. 그래도 한 사람이 실수를 하면 집합해서 혼나곤 했어요. 그 때는 운동 쪽보다 더 심하구나 생각도 했는데, 한 순간 이런 분위기가 없어졌어요.



이-아마도 매니지먼트의 영향 같아요. 예전에는 디자이너들의 쇼에 서는 모델들의 캐스팅을 가장 경력이 높은 선배들이 했었죠. 그러니 더더욱 선배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위계질서가 엄격할 수밖에 없었고.

혜-사실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어요. 지금은 모델을 배우가 되는 발판으로 생각하는 후배들도 많잖아요. 모델 자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입장에서는 안타깝죠.



이-일장일단이 있는 거 같아요. 과거에는 체계는 확실하지만 그 안에 폭력성과 모멸감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적어도 그런 모습은 없어요. 그렇지만 굳이 선배들이 군기반장 노릇을 하지 않더라도 후배들이 알아서 프로페셔널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미성년 모델도 그래요. 자기 삶을 일찍 선택한 것 뿐이지, 프로페셔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니까.

혜-세상이 바뀌었으니 변화되는 것은 당연한데 체계가 없어졌다는 느낌은 확실히 있어요..

이-참, 운동을 하다가 모델이 된 과정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혜-운동을 그만두면서 여자로서 평소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을 누려보고 싶었어요. 스물 두 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머리도 길러봤죠. 그 전에는 다 숏커트였어요. 치마도 입고 구두도 신어보고 메이크업도 해봤어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무척 하고 싶었죠. 그렇게 살다 살이 빠지면서 모델 제의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그 당시가 연예인 시켜준다며 사기 치는 경우가 많았던 때라 다 거절하고 먼저 슈퍼모델에 이력서를 내봤죠. 경력사항을 쓰라고 해 전국체전 우승, 국가대표, 우리은행 입단 이런 것을 막 적었어요. 당연히 떨어졌죠(웃음).



이-아이고, 귀여워라(웃음). 그러다가?

혜-이후 모델라인에 들어갔어요. 여기서 뽑히면 모델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학원 개념이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지정된 연습시간이 3시간 남짓이라면 저는 아침 9시에 가서 저녁 10시까지 몇개월 간 계속 연습했어요. 하이힐을 처음 신으니 무릎을 필 수가 없었고 운동하던 습관으로 치마를 입으면 다리를 벌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빨간 워킹 하이힐을 신고 치마를 입고 당시 집이었던 연신내에서 부터 걸었어요. 발톱에 피도 많이 나고 발가락도 다쳤죠. 또 당시에 선생님이 '너는 살을 많이 빼야 모델을 할 수 있는데,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2kg밖에 못 뺄 것'이라고 말해 욱 해서 7일만에 5kg를 뺐어요.



이-굶어서 뺐어요?

혜-굶지는 않았고 하루 종일 걸어다녔어요. 순두부 정도 먹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았어요. 피 흘리는 것도 왠지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 올인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것 같아 기뻤어요.



이-어쩌면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 듣기 싫은 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성임에도 남성성을 드러내야만 하는 스포츠 선수의 이력과 여성성의 극대화인 모델, 양극성을 다 가진 것은 이혜정의 큰 장점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또 운동을 하면서 생긴 근성도 지금의 이혜정을 만든 것 중 하나죠.



이-실제 본인 생각에는 운동선수로서의 이력이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면요.

혜-처음에는 너무 싫었어요. 운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세가 구부정했죠. 내가 농구를 왜 했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깡과 끈기는 모두 운동 때문에 생긴 것이더라고요. 12년 동안이나 여성성을 숨기고 살아왔던 것도 모델일을 하면서 오히려 플러스가 됐어요. 한꺼번에 막 분출하니 말이에요(웃음). 그런데 사실 운동 선수들을 보면 휴가 때 잡지란 잡지는 다 보고, 패션 프로그램도 그렇게 많이 봐요. 방에 들어가보면 핑크핑크한 여성스러운 분위기로 연출해놓기도 하죠(웃음).



이-지금 깡마른 체형의 모델이 중심인 시대지만, 조만간 90년대 슈퍼모델들 처럼 근육이 예쁜 모델들이 사랑받는 시대가 올 것 같은 조짐이 요즘 보이는데. 그렇게 된다면 이혜정 제2의 전성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혜- 촬영 때문에 파리에 갔는데 운좋게 베르사체 꾸띄르를 봤어요. 나오미 캠벨과 그 윗 세대 모델들이 무대에 섰어요. 전율이 느껴지고 눈물까지 날 뻔 했죠. 반면, 깡마른 모델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이-이제 막 데뷔하는 후배들이 다이어트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옛날이 그립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시절 멋있었던 모델들은 안 잊혀져요. 물론 케이트 모스 이후로 바뀐 것이지만, 신디 크로프트, 린다 에반젤리스타 같은 모델들의 몸과 근육, 다리 비율 등. 아우라가 굉장했죠. 그런 아우라는 아무래도 깡 마른 몸에서는 나오기 힘들어요. 이제는 모델 생명도 더 길어졌으니 근육이 잡힌 몸은 장점이 될 것 같아요.

혜-저의 제2의 전성기가 꼭 오길 바라요(웃음).



인터뷰②에서 계속...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