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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병든 독수리'에서 '불사조'로 진화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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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병약한 독수리'가 아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다시 새 생명을 얻는 '불사조'다.

허술하기만 했던 한화 이글스 야구가 달라졌다. 6점 차이 쯤은 두렵지 않다. 리드를 빼았겨도 선수들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투지'로 가득찬 눈빛을 불태우며 끈질기게 상대를 괴롭힌다. 그런 투혼은 보는 이들을 전율케 한다. 오죽하면 올해 한화 야구를 중독성 강한 '마약'과 같다며 팬들이 자연스럽게 '마리한화'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한화의 대변신은 과연 어떤 계기로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그 출발점은 지난해 11월에 열린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그 마무리캠프를 시작으로 올해 1~3월에 걸친 고치-오키나와 스프링캠프를 통해 한화는 새로운 팀컬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기간을 통해 한화는 마치 늙고 병든 몸을 스스로 불구덩이에 던져 새 생명을 얻는다는 서양 신화의 '불사조'와 같은 과정을 치러냈다. 불사조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상식의 틀을 거부하는 과단성이다. 상식적으로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면 '죽음'밖에 얻을 게 없다. 그러나 불사조는 오히려 그 안에서 생명력을 만든다. 두 번째는 온몸이 타오르는 고통을 견디는 인내심이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참는다.

흥미롭게도 이런 두 가지 요소는 바로 한화 캠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가치들이다. 김성근 감독(73)은 한화에 가장 부족한 면이 바로 이런 정신적인 면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특유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육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세도 바꾸려고 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선수 뿐만 아니라 코치진과 감독도 끙끙 앓아누울 정도로 혹독했다. 불구덩이 속에 몸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고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한 선수는 흙투성이 유니폼에 땀에 젖은 벌건 얼굴로 절규했다. "이렇게 (훈련)했는데도 진다면 정말 억울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이젠 악만 남았다." 김 감독도 말했다.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끝까지 파고 들어갔을 때 진짜 능력이 나올 수 있다. 지금 힘든 훈련을 하면서 선수들 생각이 다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는 '지고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기고 있다."

결국 김 감독이 악명높은 지옥훈련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이런 선수들의 변화다. 사실 올해 한화 전력은 지난해와 비교해서 '필승마무리' 권 혁을 빼고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배영수나 송은범, 그리고 두 명의 새 외국인 선수는 아직까지는 실질적으로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 외부 영입전력 중에서 팀에 큰 힘을 보태고 있는 건 권 혁 뿐이다. 하지만 권 혁 역시 애초에 이런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됐던 선수는 아니다. 전 소속팀 삼성에서는 추격조로만 가끔 나오던 인물이다. 하지만 권 혁은 달라졌다. 고치-오키나와 캠프를 완주하며 김 감독이 추구하는 '변화'의 가치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덕분이다.

권 혁 뿐만이 아니다. 이용규와 김경언, 조인성, 최진행, 박정진, 강경학 등 타자들과 박정진, 안영명, 정대훈, 김기현 등 한화의 중심 전력들은 모두 김 감독이 추구하는 '필승의 의지'를 몸에 받아들였다. 올해 3연패가 단 한 차례도 없고, 선발로테이션이 무너졌음에도 한화가 5할이 넘는 승률을 내는 비결의 출발점은 바로 이런 야구를 대하는 정신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