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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차 마무리 손승락의 희생 "그게 불펜투수다" [이명노의 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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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은 블론세이브를 한 마무리 손승락에 대해 "승락이는 까면 안된다"는 말을 했다. 무슨 뜻일까. 바로 팀 상황 탓에 8회 등판이 잦은 손승락의 헌신을 감싼 것이다.

넥센 마운드 구조상 손승락의 마무리 투수의 8회 등판이 잦을 수밖에 없다는 것. 선발과 불펜 모두 약했던 넥센은 이제 확실한 필승조를 갖췄다. 한현희가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홀드왕을 차지하며 정상급 셋업맨으로 성장했고, 지난해에는 조상우가 필승조로 떠올랐다. 여기에 올해는 선발로 이동한 한현희 대신 김영민이 셋업맨으로 성장하고 있다.

▶넥센 필승조 만든 손승락의 희생, "8회 등판? 그게 불펜투수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 법. 염 감독은 이들의 성장에는 손승락의 희생이 있었다고 설파했다. 선수를 키울 때 키우더라도, 이들이 위기를 만들면 어김없이 손승락이 8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는 것이다. 후배들은 뒤에 든든한 클로저, 손승락의 존재감이 있기에 마음껏 자기 공을 뿌리며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마무리투수의 9회 등판 공식이 깨진 지 오래다. 좋은 투수 자원들이 줄어들면서 불펜진은 모든 구단의 고민거리가 됐고, 필승조가 구축된 팀에서도 마무리 투수를 8회부터 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승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무리 투수 입장에서는 9회 시작과 동시에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마무리하는 게 가장 편하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1이닝만 전력투구를 하면 된다. 하지만 8회 1사나 2사, 주자가 득점권에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올라가자마자 위기 상황에서 최고의 공을 던져야 한다.

그렇다면, 마무리 6년차 손승락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예상외로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기자의 질문에 "그게 불펜투수 아닌가"라고 답했다. 손승락은 "팀 사정이 그렇다면, 거기 맞추는 게 프로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팀의 승리가 달린, 절체절명의 상황에 등판하는 마무리로 롱런해서 일까. 자신의 등판과 헌신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올해도 영민이가 성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앞에 투수들이 못해서 내가 8회에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선수들이 자리를 잡고, 익숙해지면서 필승조에 들어오면 된다"고 말했다.

사실 손승락의 희생은 낯설지 않다. 그는 지난해 포스트시즌 때 선발 전환까지 고려했을 정도다. 갑작스레 긴 이닝을 던져야 하는 상황도 대비해 훈련했다. 또한 필승조 세 명을 고정된 자리 없이 돌려가며 용병술 속에서 마무리 자리를 내려놓고, 7회면 7회, 8회면 8회, 자리를 가리지 않고 등판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힘이 좀더 있는 선수가 하는 것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FA 앞둔 6년차 마무리 손승락, "기록 관리? 1년 잘했다고 인정받는 것 아냐"

손승락은 올 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의 기록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마무리로 8회 등판이 잦은 것은 어찌 보면 불리할 수 있다. 늘어난 투구수와 연투로 인해 블론세이브 확률이 높아지고, 투수들이 중요시 하는 평균자책점 등 각종 기록이 나빠질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그는 FA 때문에 당장의 기록을 신경 써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손승락은 "올해 1년 잘한다고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못하고, 1년 잘했다고 가치를 언급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실제로 손승락은 2010년부터 6년째 팀의 마무리 투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대 한국프로야구에서 이처럼 마무리로 롱런한 투수도 없다. 과거에는 투수 분업화가 정착되지 않거나, 마무리에서 잘 던지던 투수가 선발로 가곤 했다. 2000년대 들어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현 한신 타이거즈)이 데뷔 2년차였던 2006년부터 일본 진출 전인 2013년까지 8년간 마무리로 뛰었지만, 팔꿈치 수술로 인해 2010년 한 시즌을 걸러야만 했다.

반면 손승락은 큰 부상 없이 롱런중이다. 오승환보다 '꾸준함'에 있어서는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9일 현재 현역 선수 중 삼성 임창용(204세이브)에 이어 통산 세이브 2위(158개) 기록을 갖고 있다. 역대 6위 기록, 2010년부터 비교적 단시간에 이룬 기록이다.

히어로즈로 간판이 바뀐 뒤, 팀이 어려울 때와 좋을 때를 모두 함께 한 그다.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투수들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조언을 건네고 있다. 6년째 같은 자리에서 팀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 같은 손승락, 그에게 팀을 위한 희생은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