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의 세월, 이제야 보상받는 느낌이다.
한화 이글스 투수 이동걸(32)은 시즌 초 '화제'의 인물이다. 지난 12일 부산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빈볼을 던져 벤치클리어링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KBO로부터 5경기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한화 김성근 감독이 당시 빈볼 사태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올시즌 모처럼 기회를 잡은 이동걸이 자칫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동걸을 엔트리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투수에게 오히려 기회를 줬다. 심신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 이동걸은 절치부심했다. 지난 23일 잠실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 징계가 풀린 이후 처음으로 등판해 1이닝 1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동걸은 2013년까지 삼성에서 뛰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었다. 지난해까지 그의 통산 1군 출전은 22경기에 불과했다. 2013년 시즌이 끝난 뒤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이동걸은 한화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당시 김응용 감독이 이동걸 영입을 주도했다. 지난해 9월 이후 3차례 선발 기회를 얻으며 가능성을 타진받았다.
물론 이동걸은 아직 한화의 핵심 전력은 아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꾸준히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동걸은 지난 25일 대전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서 마침내 데뷔 첫 승을 따냈다. 휘문고와 동국대를 거쳐 지난 2007년 입단한 이후 처음으로 승리투수가 된 것이다. 4-6으로 뒤지고 있던 9회말 김경언이 끝내기 적시타를 터뜨려 역전승을 일구면서 이동걸이 구원승을 따냈다. 2⅔이닝 동안 3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하루가 지난 26일 이동걸은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했다. 데뷔 이후 이처럼 관심을 받은 적이 없는 이동걸은 최근의 심정과 데뷔 첫 승의 감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동걸은 "빈볼 사건 이후 징계 기간 동안 감독님께서 '자신있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엔트리에서도 안빼주시고 잘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어제는 타이트한 상황에서 나왔는데 7회초 만루서 밀어내기 볼넷을 주고 9회초에는 안타를 맞고 한 점을 허용했다. 만일 졌으면 그게 결정적인 점수가 됐을 수도 있었다. 승리는 했지만 운이 좋았다"고 전날 경기를 되돌아봤다.
사실 징계를 받은 이후 이동걸은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단다. 논란을 일으킨 선수가 1군에 남아있기는 힘들다고 걱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오히려 그를 감싸줬다. 이동걸은 "엔트리에서 1명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스타플레이어도 아닌데 기회를 주셨다. 절치부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의 기회가 더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면서 "(첫승이)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프로선수는 1,2군 어디에 있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첫승을 해서 기쁘다"고 했다.
팬들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동걸은 "팬들께서 이제는 알아봐주시는게 상당히 감사하다. 응원해 주시는만큼 앞으로도 열심히 던지겠다"고 했다. 대전=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