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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전문, 넥센이 있어 KBO가 산다 [이명노의 런앤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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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묵은 얘기다. 선수풀이 적은 한국프로야구, KBO리그에서 트레이드 시장은 너무나 경색돼 있다.

과거 프로야구에선 나름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당시엔 구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수 혹은 현금을 통한 트레이드가 잦았다. 현장에서 감독들끼리 의견 교환을 통해 트레이드를 성사시키기도 했고, 구단의 운영비가 필요해 선수를 주고 받는 일도 많았다. 또한 입맛에 맞지 않는 선수, 밉보인 선수도 트레이드시키는 일이 많았다.

▶활발했던 트레이드, 왜 줄어든 것일까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트레이드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많게는 1년에 10건 이상 성사되던 거래가 절반 수준인 4~6건 정도로 떨어졌다.

프로야구 시장이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선수 거래는 줄었다. 현장보다는 구단의 입김이 커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구단들은 트레이드한 선수가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것을 경계했다. 다른 팀의 전력이 강화되는 것도 꺼린다. 무조건 우리가 이득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선뜻 트레이드에 나서지 못한다. 수 차례 그런 선수들이 나왔다. LG 트윈스의 경우에는 아예 팬들이 인터넷상에서 '탈쥐효과'라는 말을 써가며 조롱하기도 했다.

모기업 의존도가 높은 국내 프로야구 정서상, 이러한 환경은 불가피하다. 그룹 고위층에서 이적한 선수가 펄펄 날기라도 하면, "왜 그 선수를 보냈냐"며 불호령이 떨어진다. 주요 선수의 트레이드는 윗선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트레이드는 이후 손익계산서를 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신경쓰기 시작하면, 거래는 불가능하다. 선수는 팀과 궁합이 있다. 현재 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선수도 이적 후 새로운 팀에서 주전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해당 선수가 팀을 이적했다고 배아파 하는 건 '도둑 심보' 아닐까.

하지만 대부분의 구단들은 이런저런 문제로 인해 트레이드를 하지 못한다. 다른 팀의 전력이 올라가는 것을 경계한다. 선수가 죽더라도 그저 '현상 유지'하는 것을 택하는 편이다.

▶히어로즈의 등장, 트레이드 시장을 뒤흔들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역행하는 구단이 나왔다. 넥센 히어로즈다. 모기업 없이 운영되는 히어로즈의 경우, 창단 이후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해왔다.

물론 처음에는 히어로즈의 이런 행보가 눈총을 받았다. 운영비가 부족해 선수를 판다는 인식을 줬기 때문이다. 시장 진입 이후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고전했던 히어로즈다. 정말로 초기에는 그런 목적으로 트레이드를 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말 KBO가 트레이드를 최종 승인하면서 장원삼과 이택근, 이현승이 각각 삼성, LG, 두산이라는 기업팀으로 이적하고 말았다.

히어로즈는 이후에도 트레이드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행보가 돋보였다. 팀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성이 있었다. 황재균을 롯데 자이언츠에 내주면서 받은 김민성은 정상급 3루수로 성장했고, 역시 롯데로 이적시킨 고원준의 반대급부였던 이정훈은 불펜에서 제 몫을 했고 박정준은 NC 다이노스와의 트레이드 카드로 쓰면서 송신영을 넥센에 복귀시켰다.

2011년에는 LG와 2대2 트레이드를 통해 4번타자 박병호를 얻었다. 역사에 남을 만한 트레이드였다. LG에서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하던 박병호는 넥센 이적 후 한국 최고의 홈런 타자로 성장했다.

넥센은 2009년 3건을 시작으로 2010년 3건, 2011년 1건, 2012년 3건, 2013년 3건, 지난해 2건까지. 넥센은 매년 트레이드를 진행해왔고, 이를 통해 팀을 만들어갔다. 트레이드 영입 선수 중 이성열이나 서동욱, 윤석민 등이 넥센의 1군 주축 멤버로 뛰었다.

▶의사결정 빠른 넥센, 양 훈으로 투수 고민 풀까

모기업이 없는 넥센은 의사결정구조가 매우 단조롭다. 빠르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이장석 대표의 오케이 사인이 나오면, 선수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 대표를 비롯한 구단 프런트가 적극적으로 선수단 구성에 나서고, 현장은 적극적으로 이에 맞게 움직인다.

마치 메이저리그의 '단장 야구'를 보는 듯하다. 어찌 보면, 한국보다 선진화된 모습이다. 트레이드로 인한 손해를 걱정했다면, 이런 식의 적극적인 선수 거래는 불가능하다.

넥센은 8일 한화 이글스와 2대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전력 외로 분류된 외야수 이성열과 포수 허도환을 한화에 내주고, 군복무를 마친 투수 양 훈을 받았다. 넥센 측에서 먼저 제안을 했고, 마침 해당 포지션에 선수가 필요했던 한화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며 신속하게 일이 진행됐다.

넥센은 이성열과 허도환을 미련없이 내줬다. 이미 외야, 지명타자 자원이 충분하고, 포수 포지션의 경우에는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한 이성열의 경우, 당시에도 '사인 앤 트레이드'를 고려했던 넥센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고, 2년 5억원 계약 이후 계속 해서 선수의 길을 열어주려 애썼다.

지금껏 넥센은 투수 트레이드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사실 많은 구단이 투수나 포수 등 주축 선수로 키워내기 힘든 포지션의 경우, 트레이드를 꺼린다. 정상급 타선을 갖췄지만, 부족한 선발진으로 인해 마운드 고민이 큰 상황. 선발로 활용이 가능한 양 훈은 넥센에 꼭 필요한 선수다.

넥센 측은 이번 트레이드가 성사된 뒤, "양 훈은 군입대 전부터 오랜 시간 지켜본 선수다. 경찰 야구단에서 뛸 때 2군에서도 유심히 관찰했다"며 이미 점찍고 있던 선수라고 설명했다.

과연 양 훈이 또다른 넥센의 '트레이드 성공작'이 될 수 있을까. 만약 '트레이드 전문 구단' 넥센이 잇달아 성공작을 내놓는다면, 언젠가는 KBO리그의 다른 구단도 선수 거래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