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7억원. 한화 이글스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이다. 광주제일고를 졸업한 유창식이 2011년 한화에 입단할 때 받았던 액수. 지금은 메이저리그 A급 선발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조차도 입단 때 그만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창식은 '한화의 미래'로 불렸다.
하지만 입단 이후 5시즌 째. 지금은 '한화의 미래'가 아니라 '한화의 미스테리'가 되어버렸다. 지난해까지 4시즌 동안 단 한 번도 10승 고지에 오른 적도 없고, 평균자책점이 4점 미만으로 내려간 적도 없다. 100이닝 이상을 던진 것은 2012년 단 한 번뿐이다. 게다가 몸이 아픈 적도 여러번이다. 구동성과 내구력에 모두 문제가 있다.
지금껏 한대화-김응룡 등 전임 감독들은 어떻게든 유창식을 잘 키워보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투수코치들도 여러명 거쳐갔다. 대표적인 인물들만 해도 성 준, 송진우, 정민철 코치 등이다. 쟁쟁한 명성을 지녔던 대선배 코치들이 유창식에게 매달렸다. 결과적으로는 성과가 없었다. 유창식은 4년간 꾸준히 못했다.
'야신'이 맡았다. 지난해 한화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73) 역시 유창식을 눈여겨봤다. 분명 유창식은 매력적인 투수 재목임에는 틀림없다. 당당한 체구(1m86, 100㎏)를 지닌 왼손투수. 150㎞ 가까운 빠른 공과 날카로우 슬라이더를 던진다. 과거 SK 시절 김광현을 한국 최고의 좌완투수로 키워냈던 김 감독은 같은 왼손 정통파인 유창식에게도 흥미를 느꼈다.
캠프에서 집중조련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진 못했다. 지난해 91⅓이닝 투구(데뷔 후 2번째로 많은 이닝이다)의 영향으로 유창식은 팔꿈치가 아팠다. 그래서 고치 스프링캠프에는 합류하지 못하고 오키나와에서 계속 재활을 하다 선수단이 오키나와로 이동해 온 뒤부터 본격적인 투구 훈련에 들어갔다. 당연히 다른 투수들에 비해 연습 투구량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투수들이 스프링캠프에서 던지는 연습 투구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많이 공을 던지면서 폼을 가다듬고, 실전 감각과 제구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유창식은 분명 '준비가 덜 된' 투수다. 캠프에서 연습경기에 나가지 않고 계속 불펜에 머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김 감독은 여전히 유창식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시범경기 때 계속 등판시키고, 특히 지난 3월21일 대구 삼성전에 117개의 공을 던지게 한 것도 유창식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절대 투구량이 부족한 만큼 시범경기 실전에서 많이 던지고 맞고, 타자를 이겨보는 연습을 시킨 것이다. '벌투'따위로 폄하해선 안된다.
하지만 여전히 유창식이 갈 길은 멀다. 지난 1일 대전 두산전에 나와 무려 15개의 볼을 던지는 참사를 저질렀다. 제구력이 흔들린 게 아니다. 완전히 붕괴되어버리고 말았다. 마운드에 있는 유창식의 표정은 백지같았다. 하얗게 질려 도대체 스스로 뭘 해야할 지를 모르는 공황상태. 김 감독은 벤치에서 그런 유창식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지켜봤다. 유창식 못지 않게 김 감독의 마음도 참담했을 것이다. 그간의 조련법이 전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
유창식은 분명 쓸모있는 인재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좌완으로서 분명 할 몫이 있다. 그래서 지난 4년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김 감독 역시 유창식이 분명 팀 마운드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제구력과 정신력이 모조리 해체되어 버린 유창식을 마냥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 활용법에 대한 고민을 근본적으로 다시 하든지, 혹은 그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새로운 지도방법을 찾든지. 더 늦기 전에 명쾌한 결론이 필요할 전망이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