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1시부터 계속 (기상예보) 보고있었다고."
홈 개막전은 프로야구 구단들이 전시즌을 통틀어 가장 신경쓰는 날이다. 겨우내 기다려준 홈팬들 앞에 선수단이 온전한 실력을 선보이는 날이기 때문. 그래서 코칭스태프는 베스트 전력을 만들어 나오려하고, 구단은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한다. 홈 개막전은 팀의 한 시즌 운명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화 이글스는 홈 개막전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지난 3월31일로 예정됐던 홈개막전(상대 두산 베어스)은 오전부터 내린 비로 인해 취소되고 말았다. 구단은 어쩔 수 없이 행사를 다음날로 미뤄야 했다. 이렇게 되면서 행사 내용의 일부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VIP들의 초청 계획도 수정해야 한다. 이래저래 구단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비였다.
하지만 팀의 관점에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비'였다. 특히 한화 김성근 감독(73)은 이날 경기 취소가 결정된 후 취재진과 만나 "사실은 비가 오기를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밤에도 예보를 보고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날씨 상황부터 챙겼다"며 비가 오기를 학수고대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김 감독이 의미가 큰 '홈개막전'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우천취소를 원한 이유는 선발투수진 컨디션 때문. 애초에 계획한 선발 로테이션과 현실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로테이션이 틀어졌다. 배영수의 컨디션 난조 때문이었다. 원래 김 감독은 탈보트 뒤에 배영수를 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컨디션 난조 때문에 송은범을 지난 3월29일 넥센전 선발로 투입했다. 대신 배영수는 홈 개막전 선발로 내정하고, 일찍 대전에 내려가도록 해놨었다.
하지만 배영수의 컨디션이 잘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먼을 홈개막전에 먼저 투입하고, 배영수의 등판을 다시 하루 미뤄놨다. 김 감독은 "유먼을 하루 당겨 쓸수 밖에 없었는데, 비 덕분에 투수 로테이션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결국 비가 한화의 선발 로테이션을 한층 여유롭게 만들어준 셈이다. 김 감독은 "이제는 (비가) 더 안와도 된다. 오면 또 곤란해진다"면서 "유먼은 처음 계획대로 1일에 나간다. 그리고 데이터를 보니까 유창식도 두산전에 강했더라"고 말했다. 이는 곧 유먼에 이어 유창식이 두산과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주말 NC 다이노스와의 창원 원정 3연전에 나설 한화 선발진도 자연스럽게 구성된다. 첫 경기에는 휴식을 충분히 취한 배영수가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어 등판 후 나란히 5일씩 휴식을 취한 탈보트와 송은범이 각각 4일과 5일에 나설 전망. 탈보트→송은범→유먼→유창식→배영수로 이어지는 안정된 5선발진이 운용되는 셈이다. 시즌 초반 주전들의 부상으로 전력이 약해진 한화로서는 이같은 선발진의 안정화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홈개막전을 취소시킨 빗줄기는 결과적으로 한화의 시즌 운영에 큰 힘을 실어준 영양제나 마찬가지였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