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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예능프로그램, '반전'의 가면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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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대세다.

과거에 비해 위치가 부쩍 높아졌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과거 같으면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레벨의 톱스타 급들이 줄줄이 출연을 희망한다. 단지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 차원의 일회성 나들이가 아니다. 대중과의 호흡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예능프로그램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실제 출연 효과도 있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 이미지를 강화해 CF 출연을 늘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이례적인 일들도 벌어진다. SBS는 주말 드라마 한펀을 없애고 그 자리에 예능 프로그램을 투입했다. 토요일인 지난 24일 밤 8시45분에 첫 방송된 '아빠를 부탁해', 일요일 저녁으로 자리를 옮긴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투입된 자리가 바로 직전까지 드라마 '떴다 패밀리'가 방송되던 시간대였다. SBS가 9시대 주말극을 폐지한 것은 무려 24년 만이다.

예능 대세 속에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상황도 펼쳐진다. KBS 예능국에서는 드라마를 만든다. 톱스타와 톱작가에 영화감독이 모여 야심차게 준비중인 '프로듀사(가제)'다. 방송사 예능국 안에서 펼쳐지는 애환과 사랑을 담을 작품. '개그콘서트', '해피선데이' 등을 성공시킨 KBS 간판 예능PD 서수민 CP와 박지은 작가의 주도 하에 차태현, 공효진, 김수현, 아이유 등 꿈의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미 첫 대본 리딩까지 마쳤다.

예능 강세와 함께 종합편성채널, CJ 등 채널 다양화 속에 능력있는 예능 PD들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작가의 영향력이 큰 드라마와 달리 예능프로그램은 연출자의 기획력이 프로그램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상이 크게 올랐다고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밤 새울 일은 오히려 늘었다. 채널 다양화와 함께 전쟁 같은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포맷을 놓고 벌이는 기획자들의 고민은 상상을 초월한다. 완전한 새로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시청자들은 특정 포맷으로 성공한 한두편을 보고 나면 유사 상품에 거부감을 보인다. '식상하다'고 쉽게 비난한다. 그래서 고민 또 고민 끝에 탄생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이 끊임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기존에 성공했던 안전장치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기존에 검증된 안전장치에 새로운 요소를 살짝 가미하는 리모델링 형 예능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 '가면 예능'이 있다. 24일 '복면가왕' 홍보사는 MBC 측의 확인을 통해 '복면가왕'이 '애니멀즈' 후속으로 다음달 5일 첫선을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 2월18일 설 특집으로 방송돼 높은 시청률과 큰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 특수 제작된 가면을 쓴 8인의 스타들이 무대에 올라 오직 노래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의 달인 김성주가 MC를 맡는다. 큰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화된 형태. 가면을 쓴 탓에 선입견 없이 오직 노래 실력만을 평가할 수 있다. 10년 무명 EXID 솔지의 가창력이 재조명 됐고, 배우 김예원의 숨겨진 노래 실력과 가수 홍진영 발라드 소울 감성이 화제를 모았다. 또한 원조 꽃미남 로커 이덕진의 부활도 이 무대를 통해 이뤄졌다. 가수부터 배우까지 참가해 신선함을 잃지 않은 채 다양한 분야의 '노래꾼'을 발굴하는 무대가 됐다는 호평.

KBS에도 '가면 예능'이 있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특집 파일럿 프로였던 '마녀와 야수'가 KBS 2TV에서 목요일 저녁 8시55분에 정규 편성 돼 방송 중이다. 청춘 남녀가 특수분장을 해 외모를 배제한 채 오직 대화와 취향만으로 상대에게 다가간다는 색다른 미팅 컨셉트. 제작진은 '특이한 얼굴로 특별한 데이트를 하는 신개념 데이트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한다. 스펙으로만 상대를 선택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아예 상대에 대한 정보를 원천 봉쇄해 의외성을 극대화했다.

'가면 예능'의 핵심은 '반전'에 있다. 사실 '복면가왕'이나 '마녀와 야수' 모두 가면을 빼면 기존에 흔히 보던 오디션, 미팅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하지만 출연진에게 가면을 씌움으로써 예측 불가의 쫄깃함과 궁금증을 가미했다. 시청자들은 출연진과 함께 가면 속 인물은 과연 누굴까, 과연 어떨까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가면을 벗고 실제 모습을 공개하는 순간 시청자들은 머릿 속 상상이 얼마나 큰 선입견을 그릴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어쩌면 일상 생활에서 너무나도 흔히 가지게 되는 선입견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줌으로써 교훈적 요소도 숨기고 있는 '가면 예능'. 진화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반전'의 탈을 쓰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