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찾아온 K리그 클래식은 '골맛난' 세상이었다.
15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펼쳐진 포항과 울산의 146번째 '동해안 더비'에서 총 여섯 골이 터졌다. 전반에는 한 골에 불과했지만, 후반에 무려 다섯 차례나 골망이 출렁였다. 만원(1만7443명)을 훌쩍 뛰어넘어 스틸야드를 채운 1만9227명의 구름 관중들은 멈추지 않는 '골 쇼'에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포항 용광로에서 이렇게 많은 골이 터진 이유는 무엇일까.
삼박자가 갖춰졌다. 우선, 공격 축구를 유도하는 심판들이 있었다. 이날 양팀의 파울 개수는 총 14개(울산 8개, 울산 6개)밖에 되지 않았다. K리그 클래식 최고의 더비로 꼽히는 '슈퍼매치'에 버금가는 '동해안 더비'는 과열된 분위기로 인해 많은 파울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9일 맞대결에서는 양팀 합쳐 38개가 나왔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달랐다. 주심은 심한 파울이 아니면 경기를 진행시켰다. 자연스럽게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면서 골이 들어갈 수 있는 찬스가 많이 양산됐다. 슈팅은 총 17개가 나왔다. 올 시즌 K리그 심판진은 56분대 머무는 실제 경기 시간을 60분대인 유럽 리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윤정환 울산 감독과 황선홍 포항 감독의 공격 축구에 대한 의지도 한 몫 했다. 윤 감독이 추구하는 '선수비 후역습' 축구가 가동되면 골이 많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윤 감독은 역습의 질을 높였다. 전반 추가시간에 터진 제파로프의 선제골이 그랬다. 왼쪽 풀백 정동호의 폭발적인 오버래핑에 이은 날카로운 크로스를 문전에 있던 제파로프가 왼발 논스톱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수비가 먼저라고 하지만 윤 감독은 공격에 무게를 둔 '철퇴축구'를 보였다. 후반 11분에는 이번 시즌 처음으로 타깃형 스트라이커 자원인 양동현과 김신욱 투톱을 가동했다. 경기가 끝난 뒤 윤 감독은 "2-1 상황에서 좀 더 공격적으로 하기 위해 투톱을 세웠다. 소득을 본 것 같다. 신욱이가 교체 투입되면서 상대 수비라인이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2선에서 볼을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황 감독은 이날 쫓는 자의 입장이었다. 황 감독이 선택한 교체 카드는 모두 공격수였다. 박성호 조찬호 티아고였다. 이 중 1-3으로 뒤진 후반 32분 티아고가 추격골을 터뜨리자 용광로는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윤 감독도 전반 27분 중앙 수비수 김치곤이 부상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수비수 김근환으로 교체했을 뿐 교체멤버는 김신욱 안현범 등 공격수를 택했다. 공격 축구를 위한 카드는 적중했다. 김신욱은 포항이 3-2 한 골차로 바짝 따라붙은 후반 33분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포항 골키퍼 신화용의 실수를 발생시키면서 시즌 첫 골을 신고했다. 김신욱은 "개인적으로 골은 3~4경기 뒤에 넣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무리하면서까지 슈팅 훈련을 했다. 당연히 골을 노리고 찼다"고 밝혔다. 이어 "슈팅 훈련을 한 것은 4월 대표팀 평가전을 위한 맞춤 훈련이었다. 물론 뽑힌다는 가정에서다. 대표팀에 발탁될 경우 브라질월드컵 이후 처음인데 성장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동해안 더비'라는 특수 호재가 있었다. 양팀 선수들은 라이벌전에 대한 자존심이 걸려있었다. 스토리가 깊다. 최근 얘기만 꺼내도 선수들은 전의를 불태운다. 2013년 울산은 비겨도 클래식 우승을 할 수 있던 시즌 최종전에서 포항에 0대1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4년 울산은 준우승의 아픔을 시즌 개막전 승리로 되갚았다. 라이벌전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한 발짝 더 뛰게 만들었다. 이날 다소 아쉬운 점은 포항이 내준 두 골이다. 수비수와 골키퍼의 치명적인 실수로 실점했다.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는 더비에서 볼 수 있는 명장면에 홈 팬들은 망연자실, 원정 팬은 환호했다.
포항=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