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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컵]'은퇴 경기' 차두리를 위한 후배들의 특별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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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A매치 친선경기에서 그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첫 A매치 무대를 누볐다. 비록 0-1로 뒤진 후반 40분 교체출격했지만 야심찬 첫 걸음이었다. 이후 그의 태극마크 스토리는 환희와 좌절, 슬픔과 즐거움의 '희로애락'으로 그려졌다.

14년 3개월간 가슴에 품었던 태극마크,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차미네이터' 차두리(35·FC서울)의 국가대표 마지막 여정이 시작된다. 차두리가 31일 호주 시드니의 호주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호주와의 2015년 호주아시안컵 결승전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그의 축구인생은 세상과의 싸움이었다.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의 '후광'을 털어내기 위한 투쟁이 이어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하며 '차범근의 아들' 아닌 차두리로 이름을 알린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빌레펠트→프랑크푸르트→마인츠→코블렌츠→프라이부르크(이상 독일)→셀틱(스코틀랜드)→뒤셀도르프(독일)을 거쳐 2013년 FC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변신한 그는 네 차례 월드컵을 경험했다. 그에게 월드컵은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안겨줬다. 2002년과 2010년 월드컵에서는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국 축구사를 새로 썼다. 2006년과 2014년에는 최종엔트리에서 탈락 후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차미네이터'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국민 스타'로 떠 올랐다.

2014년 겨울, 현역과 은퇴의 갈림길에서 선 그는 최종 결단을 내렸다. "아시안컵은 내가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대회다." 2015년 호주아시안컵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그는 마지막을 약속했다. 추억이 가득한 아시안컵에서의 피날레를 그렸다. 2004년,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나서게 된 아시안컵이었다.

'맏형'의 존재감은 유독 컸다. 경기장 안팎에서 내뿜은 '해피 바이러스'는 슈틸리케호의 활력소였다.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독일어가 능통한 그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며 믿음을 보였다. 축구 인생 황혼기에 출전한 아시안컵, 그에게 그라운드는 좁았다. 전성기였다. 공격과 수비에서 오른 측면을 지배한 그는 전국민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한 '폭풍 질주'를 선보이며 슈틸리케호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위기의 순간 빛을 냈다. 부상 및 감기 몸살로 일부 주전들이 빠진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A조 2차전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트레이드마크인 '폭풍 질주'로 2도움을 기록했다.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도 폭풍 질주를 재연했다. 수비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는 육탄 방어로 무실점 수비를 이끌어냈다.

마지막 한 고비만 넘으면 된다. '유종의 미'를 위해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그리고 있다. 국가대표 은퇴경기를 우승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차두리가 마지막 불꽃을 태울 준비를 마쳤다. 관중석에는 의미있는 손님도 방문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13년만에 경기장을 찾은 어머니 오은미씨다. 이라크와의 4강전부터 차 감독과 함께 관중석을 지킨 오씨는 아들의 마지막 A매치를 기념하기 위해 호주스타디움을 찾는다. 차두리의 화려한 피날레를 위해 '동생'들도 의지를 다지고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형제처럼 지냈던 기성용(26·스완지시티)이 '캡틴'으로 슈틸리케호를 이끈다.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띠동갑 조카' 손흥민(23·레버쿠젠)은 차두리에게 우승컵을 안겨주기 위해 발 끝을 예열 중이다. 기성용의 정확한 롱패스에 이은 손흥민의 화끈한 마무리가 슈틸리케호의 우승 시나리오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나온 '포옹 세리머니'가 재연된다면 금상첨화다.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손흥민의 골을 도운 뒤 그라운드에 누워 격한 포옹을 나눴다. 차두리의 국가대표 은퇴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세대의 마지막 퇴장이다.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슈틸리케호가 차두리를 위한 우승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두리형을 위해 우승컵을 선물하고 싶다." 결승전을 준비중인 후배들의 목소리에는 우승에 대한 의지가 가득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