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결전을 앞두고 세 가지를 강조했다. 유연한 상황 대처 능력, 오만전 후반 때 보여준 높은 볼점유율, 호주전 때의 강력한 투지였다.
22일(한국시각) 뚜껑이 열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내내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이 강조하는 높은 볼점유율 축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손흥민(23·레버쿠벤)의 골이 터진 연장 전반 14분부터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환하게 웃을 수 없었다. 이런 경기력이라면,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은 꿈만으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담 털어낸 손흥민, 이근호 고군분투
이날 승리의 키는 손흥민(23·레버쿠젠)이 쥐고 있었다. 몸 상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10일 오만전 이후 감기에 걸린 뒤 4일간 쉬었다. 쿠웨이트전은 결장했고, 호주전에서 예열을 마쳤다. 우즈벡전을 앞둔 그의 각오는 남달랐다. "여기서 지면 짐을 싸고 돌아가야 한다. 나는 아시안컵에 놀러오지 않았다." 그러나 손흥민은 우즈벡이 들고나온 전술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우즈벡은 손흥민이 공을 잡으면 2명이 압박해 공간을 주지 않았다. 공간이 나면 손흥민의 빠른 스피드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판단한 전략이었다. 한국은 손흥민의 장점이 막혀버리자 전반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손흥민은 전반 막판 우즈벡 진영 왼쪽에서 프리킥 찬스를 맞았지만, 무회전킥이 허공을 갈랐다. 후반 조금씩 살아났다.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의 부담을 줄였다. 전담 키커를 기성용(26·스완지시티)으로 바꾸었다. 이근호와 포지션 체인지를 통해 상대를 교란하던 손흥민은 좁은 공간 안에서 조직력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3번의 슈팅 중 하나를 골문으로 집어넣었다. 연장 전반 14분 왼쪽 측면에서 올려준 김진수의 크로스를 문전에서 헤딩 슛으로 꽂아넣었다. 손흥민이 부활하기 전까지 '악바리' 이근호(30·엘자이시)가 고군분투했다. 우즈벡이 중원을 사수하기 위해 중원에 많은 수의 자원을 배치시키면서 공수가 단절된 상황에서 이근호는 상대 뒷 공간을 파고들었다. 공을 계속 빼앗기는 상황이 생기면서 롱볼 축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근호는 발이 느린 우즈벡의 센터백 라인인 안주르 이스마일로프와 샤브카트 물라자노프의 사이를 집요하게 비집었다. 이근호는 후반 36분 이정협(24·상주) 대신 한국영(25·카타르SC)가 교체되면서 원톱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에도 엄청난 활동량을 보였다. 이근호는 연장 후반 6분 장현수(24·광저우 부리)와 교체됐다.
▶의미없는 볼점유율, 경기 변화시킨 차두리
전반은 졸전이었다. 그러나 기록상에선 한국이 크게 앞섰다. 특히 볼점유율에선 62.6%를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만족스러울만 했다. 그러나 의미없는 기록이었다. 패스는 자주 끊겼다. 62번이나 패스미스를 했다. 상황 대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모습이었다. 우즈벡이 내세운 미드필드 장악 전략에 전혀 맥을 추지 못했다. 역시 불안한 수비으로 모든 것이 초래됐다. 김진수(23·호펜하임)-김영권(25·광저우 헝다)-곽태휘(34·알힐랄)-김창수(30·가시와)로 구성된 포백 수비라인의 조직력은 모래알이었다. 특히 양쪽 측면은 자주 상대에게 돌파를 허용하면서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도 자주 노출됐다. 뒷 공간을 내주는 장면도 많이 연출됐다. 또 패스미스의 단초가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다. 베테랑의 경험이 필요했다. 후반 24분 차두리(35·서울)를 투입했다. 그러자 공격이 풀리기 시작했다. 차두리의 폭발적인 오버래핑과 힘에서 밀리지 않는 수비는 공격진을 춤추게 만들었다. 차두리는 1-0으로 앞선 연장 후반 104분 손흥민의 추가골까지 돕는 크로스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한 가지 소득, 다양한 전술 변화
120분을 뛰었다. 힘든 경기였다. 이근호 손흥민 기성용은 다리에 쥐가 났다. 승리는 4강행 티켓을 가져다 줬다. 내용만 놓고 보면 경기력은 물음표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소득이 있다. 바로 다양한 전술 변화다. 멀티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후반 37분 이정협 대신 한국영이 투입되면서 전술의 변화는 시작됐다. 기성용이 측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손흥민이 프리롤을 맡았다. 연장 전반에는 손흥민이 원톱을 기성용과 이근호가 양쪽 날개를, 남태희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섰다. 그러나 기성용은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렇게 다양한 전술에 상대 집중력은 흐트러졌다. 조직력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지만, 팔색조 전술은 이날 승리에 큰 힘이 됐다.
멜버른(호주)=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