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작은 휴대폰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건물 임대인으로부터 2년 계약이 만료되는 2015년 2월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건물 주인이 직접 매장을 운영하겠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김씨가 이 상가를 임대해 입주한 것은 지난 2011년 2월. 건물 주인에게 보증금 1500만원, 월세 160만원의 조건에 2년간 상가 임대차 계약을 했고, 이 건물에 세 들어 있던 전 임차인에게 별도로 5600만원의 권리금을 지불했다. 그는 지난 2013년 2월 2년간 재계약해 내년 2월이면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일정액 이하(서울 기준 4억원)이면 최대 5년간 상가 세입자는 같은 가게에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다. 김씨의 가게 환산보증금(1500만원+160만원×100=1억7500만원)은 4억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5년이 되는 2016년 2월까지는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씨는 건물 주인에게 이 같은 법적 장치를 설명하며 계약연장을 요구하고 있으나 주인은 막무가내로 "내년 2월까지 가게를 비워 달라"고 해 곧 법적인 절차에 착수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설사 법에 따라 재계약이 이뤄지더라도 5년간의 영업보장 기간이 끝나는 2016년 2월에 주인이 직접 가게에서 장사를 한다는 조건 아래 철수할 경우 권리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 상으로는 권리금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주인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겠다며 비워달라고 할 경우 권리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되는 것이다.
▶여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권리금 인정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지난주부터 이 같은 자영업자들의 상가 권리금 피해를 최대한 구제하고자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일부 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개정안이 여야 논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김씨와 같이 권리금 피해를 입는 사례는 사라지게 된다.
여당에선 김진태 의원(새누리당)이 정부 청부 입법으로 지난 11월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에 맞서 야당에선 서영교 의원(새정치민주연합)도 같은 달 참여연대와 함께 지난 9월 발표된 정부안을 보완해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의 개정안은 모두 권리금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 김진태 의원의 개정안에는 '권리금' 조항을 신설했다. 상가건물에서 영업을 하려는 자가 영업시설, 영업상의 노하우, 상가건물의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유형·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이용대가로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금전 등의 대가를 권리금으로 규정했다.
김진태 의원 안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대차 종료 후 2개월까지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으로부터 임대차 종료 당시의 권리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임대인이 이를 위반해 임차인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토록 했다. 권리금을 대신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임대인이 직접 임차인으로부터 가게를 인수할 경우에도 현재와 다르게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불해야 한다. 여야 모두 환산보증금에 관계없이 일정기간 임차인에게 영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환산보증금이 일정액 이하일 경우에만 5년간 영업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영업기간 5년 보호 vs 10년 보호
하지만 여야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도 있다. 우선 김진태 의원 안에는 현재와 같이 임차인이 5년 동안만 한 곳에서 영업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반면 서영교 의원 안에는 임차인이 원할 경우 10년 간 가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서영교 의원 측은 "상가를 임대하면 권리금과 시설비 등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여기에 영업망 형성을 위해 들인 영업비용 등을 감안할 때 10년 정도는 안정적으로 가게를 운영할 수 있어야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독일과 프랑스,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상가건물 임대차 관련 법규에선 9년에서 15년 이상의 장기 임대차를 보장하고 있는 것도 참고했다고 김 의원 측은 전했다.
이에 대해 김진태 의원 측은 "영업보장 기간을 10년으로 할 경우 상위 법률까지 감안했을 때 임대인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 적지 않은 상가 임대인들이 우리 의원실로 항의전화를 해 '10년 동안 한 사람에게 가게를 임대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 일정 부분 임대인의 입장도 배려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업보장기간 '10년'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상가뉴스레이다의 선종필 대표는 "10년으로 보장기간을 정하면 임대인들의 재산권 행사를 너무 오랜 기간 묶어놔 오히려 반발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 역시 "임대인들이 반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10년으로 정할 경우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매년 임대료를 상한선(서울 기준 환산보증금 4억원 이하, 연간 9%)까지 올릴 경우 10년간 한 곳에서 영업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상가 중개경력 10여년의 H공인중개사(서울 양천구 목동) 조원영 대표는 "영세 상인들에겐 연간 임대료 인상 상한선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문제다. 영업기간 보장을 늘려주는 것 보다 이번 법 개정에서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은행 이자율을 고려해 낮추는 것이 영세 상인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가 재건축시 보상 불필요 vs 보상 필요
상가를 재건축할 때 임차인에게 보상을 해줄 것인가를 놓고도 여야가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여당 측은 상가를 재건축할 경우에는 현재와 같이 임차인에게 권리금 등을 보상해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김진태 의원 측은 "권리금은 그야말로 임차인들 간에 주고받는 것이다. 집 주인이 상가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권리금을 보전해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서영교 의원 측은 "독일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임대인의 재건축 등으로 임차인이 퇴거하게 되는 경우 인근지역에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시설물 이전비용 등을 보상해 주고 있다"면서 "현재와 같이 상가 재건축시 임차인이 권리금 등 많은 재산상 손실을 입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의 입장도 엇갈린다.
선종필 대표는 "임대인이 새로 상가를 건축하는 데는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일정기간 임대를 하지 못하는데 따른 기회비용도 있다. 임차인에게 보상을 해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합수 팀장은 "상가 재건축시 임차인이 최소한 시설을 투자하는데 들인 돈만이라도 건물 주인이 보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