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시봉 열풍과 영화 '써니'의 흥행에 이어 올해도 복고 마케팅이 대중문화계에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세시봉과 '써니'가 7080 문화를 대변했다면 올 들어서는 1990년대를 추억하는 2030 세대들이 주요 타킷이 되고 있다.
민주화를 열망하던 세대를 거쳐 자본의 가치가 점점 중요시되던 시기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담백하게 담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영화 · 드라마 추억 만들기 인기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이 추억 만들기의 시작을 알렸다.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을 담은 이 영화는 1990년대라는 그리 멀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학 새내기들의 풋풋한 사랑과 당시 시대상을 담아 같은 시기 대학을 다녔던 관객들에게 애틋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과 같은 옛노래가 다시금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너도나도 복고 열풍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도 행복했던 추억을 되짚었다. 극중 등장한 네 명의 남자주인공은 모두 마흔 한 살의 중년. 이들은 사업을 같이 하거나 지근거리에 살면서 생활에 부대끼곤 하지만 무엇보다 진한 우정과 의리로 서로를 감싸 안는다. 장동건, 김수로, 김민종, 이종혁이 매회 프롤로그에서 선보인 추억의 장면들은 동시대를 살았던 시청자들에겐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쁨을 만끽하게 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이 드라마가 40대 직장인 남성들에게도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는 이들보다 조금 어린 세대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부산을 배경으로 99학번이 될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 제대로 흥행몰이 중이다. 드라마는 PC통신, DDR 게임, 다마고치 등 19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들로 가득하다. 또 아이돌 그룹 1세대로 인기에 있어 쌍벽을 이룬 H.O.T.와 젝스키스의 팬문화를 다룬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등장한다. 당시 인기를 모았던 노래들을 상황에 맞춰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왜 이 시점에서 복고 컨셉트인가?
안방극장에서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의 원인으로 불황을 거론하기도 한다. 방송가에서는 '경제가 불황이면 정보를 주는 인포테인먼트나 부담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개그 프로그램들이 호황을 누린다'는 속설이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불황에는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며 어려움을 견뎌내려는 심리를 겨냥한 복고 마케팅이 뜬다'는 속설이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시청자들이 팍팍한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사의 품격'에서 남자주인공들이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여유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두고 한 시청자는 "동시대 91학번 출신들의 현실적인 삶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지만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며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했다"고 평가했다.
'복고 컨셉트'는 이제 드라마뿐 아니라 방송가의 전반적인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건축학개론'을 패러디한 '개그학개론' 편을 선보였으며, 9월 방송을 앞둔 KBS2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는 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가수 김원준이 MC로, 조성모와 현진영, 손호영 등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한다.
대중문화계뿐만이 아니다. 제약업계가 생산이 중단된 옛날 약품을 출시하는 등 복고는 이제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핫 키워드'로 떠올랐다. 김명은 기자 dram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