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400야드도 날릴 수 있는 그는 골프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미국 플로리다 출신으로 어렸을 적, 농장에서 자라 골프와 관련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의 유일한 골프 스승은 아버지 제리 왓슨. 집 앞에서 혼자 솔방울을 치면서 스윙을 익혔다. 이른바 '홈메이드' 스윙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플레이를 '버바 골프'라고 부른다. 하지만 1m91의 장신에 육중한 몸에서 나오는 장타는 세계 정상급이다. 2012시즌 최장거리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427야드, 올시즌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313.1야드로 PGA 1위다. 그런데 그의 장타력은 늘 퍼트가 약하다는 비난에 가려져 왔다. 미국프로골프(PGA) '괴력의 왼손 장타자' 버바 왓슨(34·미국).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장타력 뿐만 아니라, 정신력, 위기관리 능력까지 갖춘 선수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되면서부터다.
왓슨이 9일(한국시각)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골프장(파72·7435야드)에서 끝난 미국남자프로골프(PGA)투어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남아공의 루이 오스트호이젠(30)과의 연장 플레이오프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10언더파 278타로 공동선두로 연장을 맞이한 그는 2차 연장 10번홀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우승으로 한 순간에 그를 향한 모든 비난을 일축시켰다. 그를 더이상 '새가슴'이라 조롱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퍼트에 약하다는 비난도 들을 필요가 없게 됐다. 보기를 2개 기록했지만 버디를 6개나 잡아내는 정교함으로 그린재킷을 입었다. 특히 4라운드 13번홀부터 16번홀까지 기록한 4홀 연속 버디 장면을 보면 퍼트에 약하다던 선수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했다. 롱퍼트, 쇼트 퍼트 가릴 것 없이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위는 공동 3~4위권에서 공동 선두로 수직 상승했다. 우스투이젠과의 연장 서든데스 플레이오프에서는 쇼트 게임의 진수를 보여줬다.
거친 입담 때문에 그에게 등을 돌렸던 미국 언론들도 그의 우승을 대서 특필했다. 왓슨은 지난해 7월 유럽투어 프랑스 오픈에 출전해 "대회가 엉망이다. 카메라에 휴대폰이 넘친다"며 유럽골프를 맹비난했다. 컷탈락한 뒤의 발언이라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지만 대회전 에펠탑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호화 호텔에서 포즈를 취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미국 언론은 '철없다'며 그를 비난한 바 있다.
왓슨은 우승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꿈에만 그리던 마스터스 우승을 이뤄냈다. 연장전에서는 어떻게 플레이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우승의 원동력에는 어머니와 몇 주전 입양한 아들이 있었다. 그는 우승 퍼팅에 성공한 뒤 굵은 눈물을 흘렸다. 품에는 어머니 모릴 왓슨이 있었다. 2010년 말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한 아버지에 이어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다. 왓슨은 지난해 1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우승한 뒤 아버지의 영전에 우승을 바친다고 밝혔다. 이어 "어머니 사랑해요"라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모릴은 아들의 우승 직후 "왓슨이 아버지와 어릴적부터 골프를 연습했다. 집안에서도 볼을 쳤을 정도"라며 남편을 떠올렸다. 모릴은 아들이 연장에서 집중할 수 있었던 비결로 손자를 꼽아 눈길을 끌었다. "왓슨이 2주전 입양한 6주된 아들을 보고 싶어 빨리 집에 가고 싶어했다."
왓슨은 마이크 위어(캐나다) 필 미켈슨(미국)에 이어 왼손잡이로 그린재킷을 입은 세 번째 선수가 됐다. 또 왓슨의 우승으로 마스터스는 왼손 골퍼들의 강세를 이어가게 됐다. 최근 10년간 왼손 골퍼가 5차례나 그린재킷을 입었다. 위어는 2003년, 미켈슨은 2004년 2006년 2010년 마스터스의 주인공이 됐다. 통산 4회 우승을 노렸던 미켈슨은 공동 3위(8언더파 280타)에 그쳤다. 우승상금으로 144만달러(약 16억원)를 획득한 왓슨은 지난주까지 10위였던 상금랭킹 순위도 1위(321만4138달러·약 35억5400만원)로 수직 상승했다. 마스터스 우승으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페덱스컵 포인트도 600점을 추가해 12위에서 2위(1322점)으로 뛰어 올랐다.
한편, 재미교포 나상욱(29·타이틀리스트)은 4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2언더파 286타로 공동 12위를 차지했다. '슈퍼 루키' 배상문(26·캘러웨이)은 최종합계 4오버파 292타로 공동 37위, 양용은(40·KB금융그룹)은 공동 57위(11오버파 299타)에 그쳤다. '신-구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37·미국)와 로리 매킬로이(23·북아일랜드)는 5오버파 293타로 나란히 공동 41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