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성남의 가고시마 전지훈련 캠프에서 만난 골키퍼 하강진(23)은 "내가 (박)진포형을 살렸다"고 웃으며 호언했다. "은인이죠." 성남의 2년차 오른쪽 풀백 박진포(25)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1년 전 포항 스틸러스와의 개막전은 박진포의 프로 데뷔전이었다. 의욕이 앞섰다. 전반 20분만에 프로 첫 옐로카드를 받아들었다. 1대1로 비기던 후반 43분 모따의 다리를 걷어찼다.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평생을 꿈꿔온 프로 첫 무대에서 치명적인 실수였다. "와, 죽었구나 말곤 아무 생각이 안났다. '멍때리는' 표정이 중계화면에 다잡혔다"고 했다. 하늘이 노랗던 그 순간 모따의 슈팅이 골문을 비껴갔다. 하강진의 선방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1대1로 간신히 비겼지만 악몽같은 개막전이었다.
그리고 1년 후, 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디펜딩챔피언' 전북 현대와의 개막전에서 박진포는 또다시 선발로 나섰다. 전반 24분 0-2로 뒤지던 상황에서 터진 회심의 추격골은 박진포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한상운이 슬쩍 흘린 볼을 박진포가 힘있게 감아찼다. 에벨톤이 문전에서 튀어올랐다. 헤딩으로 사뿐히 밀어넣었다.
2년차 박진포의 개막전은 1년 전과 완전히 달랐다. '극과 극'이었다. 이날 성남은 전북에 2대3으로 패했지만 2골을 내주고, 2골을 따라붙으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명승부를 펼쳤다. 특히 오른쪽 라인을 장악한 박진포의 파이팅은 눈부셨다. '신공'의 활력소가 됐다. 신태용 성남 일화 감독이 미드필더 전성찬과 함께 가장 기량이 발전한 선수로 첫손 꼽는 수비수다. 자타공인 성남의 체력왕이다. '지옥의 서킷 훈련'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다. 1m73의 수비수로는 크지 않은 키지만 제공권도 뛰어나다. 김종진 성남 전력분석관은 "비디오를 보면 헤딩력, 점프력, 위치선정이 탁월하다"고 귀띔했다.
일본 가고시마 훈련에선 동료들로부터 '지분사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오른쪽 라인의 지분을 100% 소유했다는 뜻이다. 2골을 기록한 윙포워드 에벨톤과는 오른쪽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에벨톤이 박진포에게 "우리 똑같은 축구화를 맞춰 신자"며 대놓고 친근감을 표시할 정도다. 에벨톤은 개막전에 박진포와 맞춰신은 그 축구화를 신고 나와 2골을 기록했다. "다들 (한)상운이형, 홍 철의 왼쪽라인을 주목한다. 에벨톤과 나는 오른쪽 라인에서 죽어라 '뛰는 걸'로 승부하자고 합의했다"며 웃었다.
지난 시즌 32경기에서 3도움을 기록한 박진포는 개막전부터 도움을 기록하며 올시즌 활약을 예고했다. '극과 극' 개막전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실수를 많이 했다. 나 때문에 진 경기도 몇 개 있다. 감독님이 믿어주시고 계속 써주신 덕분"이라며 '스승' 신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스타트가 좋으니 올 시즌 도움을 7~10개 정도 해야겠다"며 목표를 상향조정했다. "2년차 징크스 없이 올 시즌 성남의 64경기 중 60경기를 뛰고 싶다"는 구체적인 희망도 밝혔다. "나머지 4경기는?"이라는 질문에 "아마 경고누적으로 못 뛰지 않을까"라며 싱긋 웃었다. "몸사리지 않고 터프하게 뛰겠다"는 각오와 경고가 함께 담긴 단단한 메시지였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