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에게 태극마크와 월드컵은 애증의 대상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 월드컵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후 월드컵과 태극마크 때문에 수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게으른 선수라는 따가운 눈총과 불의의 부상, 턱없이 짧은 출전기회까지 악몽의 연속이었다. K-리그에서는 최고의 골잡이였지만, A대표팀만 오면 기가 죽었다. 이동국은 지난해 UAE(아랍에미리트)와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3차전에서 55분을 뛰는데 그쳤다. UAE전 후 굳은 표정의 이동국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외면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날 밤 이동국은 트위터에 '고맙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이름을 외쳐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전북 현대의 우승을 위해 다시 뛰겠습니다'고 썼다. A대표팀 은퇴를 암시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은사의 부름은 외면할 수 없었다. 전북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최강희 감독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이동국은 애증의 태극마크를 다시 가슴에 달았다. 옛 기억은 모두 잊기로 했다. "예전에 A대표팀에서 부진했던 일들은 잊고 새 출발을 하겠다. 쿠웨이트전은 물러설 수 없는 경기다. 화끈한 승리로 최종예선에 진출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며 "큰 부담은 없다. 대표팀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경기에 나서겠다."
29일 쿠웨이트와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최종전. 나흘 전인 2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렸던 이동국의 발은 무거웠다. 투톱 파트너 박주영(아스널)과는 엇박자를 냈고 슈팅은 한 박자 늦기 일쑤였다. 기회가 무위로 돌아갈 때마다 이동국은 허공을 쳐다봤고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이동국은 스승의 믿음에 보답을 했다. 한 순간만큼은 침착하게 킬러 본능을 뽐냈다. 후반 20분 터진 이동국의 골로 기선을 제압한 한국은 이근호(울산)의 추가골까지 보태 쿠웨이트를 2대0으로 완파하고 최종예선행 티켓을 손에 쥐었다.
이동국은 득점 성공 뒤 두 팔을 벌려 손가락을 하늘 위로 치켜 세우는 골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그동안 자신을 믿어준 최 감독, 팬들과 함께 생애 마지막 월드컵이 될 지도 모르는 브라질월드컵에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