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성 감독님, 안돼~~~."
전남 드래곤즈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떴다.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전남 신인 선수들이 비대위의 멤버로 나섰다. '안돼'라는 유행어로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끌고있는 코너 비대위를 전남 선수들이 패러디한 것. 넘치는 끼와 재치있는 말 솜씨로 150여명의 팬들과 35명의 선수단을 들었다 놨다. 반면 개그의 희생양이 된 정해성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26일 전남 광양의 광양제철고 체육관에서 열린 팬즈데이에서였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선수들의 장기자랑 시간. 신인 심동운 정훈찬 이슬찬 등 신인 3명이 무대위에 등장했다. 마이크를 잡은 심동운은 장기자랑에 앞서 대뜸 "감독님, 코치 선생님, 단장님 먼저 죄송합니다"를 외쳤다. 이목이 집중됐다. 비대위의 과제는 폭탄이 설치된 광양제철고 체육관에서 팬즈데이에 참석한 팬들을 대피시키는 것. 심동운이 먼저 나섰다. "정해성 감독님께 빨리 팬들과 선수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말씀드리면 안돼. 일단 두 손 모으시고 한 참 뜸을 들이신 뒤 알수 없는 제스쳐와 영어로만 말씀하실텐데, 안돼." 정 감독이 선수단을 모아 놓고 작전을 지시할 때의 행동을 그대로 묘사했다. 선수들 칭찬할 때는 "굿, 사이먼(Good, Simon)"이라고 영어로만 말하는 정 감독의 특징까지 잡아냈다. 선수단은 뒤집어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정 감독은 그저 웃었다.
다음 목표는 윤덕여 수석 코치였다. "윤덕여 코치님께 말씀드려도 안돼. 대피시켜야 하는데 선수들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설명만 하시고, 대피가 잘 안되면 결국 '버럭'만 하시잖아." 윤 코치도 그저 웃었다. 조진호 코치와 김도근 코치도 예외일 수 없었다. "조진호 코치님은 선수단보다 먼저 혼자 대피하셔서 안돼. 김도근 코치님은 음료수 캔 뚜껑 모으시느라 안돼." 평소 말과 행동이 빠른 조 코치와, 휠체어 기부를 위해 음료수 캔 뚜껑을 모으는 김 코치의 행동이 타깃이었다. 결국 팬들과 동료 선수들의 대호응 속에 막을 내린 전남 신인들의 비대위. 이들은 무대를 내려온 뒤 코칭스태프가 모여 있는 곳을 피해 멀찌감치 자리를 잡아 앉았다.
주장이자 최고참인 이운재는 후배들의 '재롱'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후배들의 재치와 용기에 다소 놀라기도 했단다. "예전같으면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감히 감독님과 코칭스태프를 개그 소재로 삼다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부주장 이 완은 가발을 쓰고 나와 코믹 댄스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고 선수들끼리의 셔플 댄스 배틀이 벌어지기도 했다.
2시간의 팬즈데이가 훌쩍 지나갔다. 선수들도 팬들도 짧은 만남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금세 다음에 만날 날을 약속했다. 다음달 4일 전남이 강원을 상대하는 홈 개막전을 통해서다. 정해성 감독은 "선수단이 많이 바뀌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일본 전지훈련을 통해 선수단이 하나가 됐다. 올해는 '흑룡의 해'다. 최선을 다해 먼저 4강 안에 들고 꼭 우승을 노려보겠다"는 말로 짧은 만남을 아쉬워 한 팬들을 위로했다. 광양=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