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슬이 KBS2 '스파이 명월' 촬영 거부에 이은 돌연 미국행, 하룻만에 다시 귀국하는 사상 초유의 해프닝을 벌였다. 그녀가 이렇게 무리수를 둔 진짜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한 불만과 PD와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촉발됐을까. 대다수의 방송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제작되는 드라마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의 발단은 '드라마 공화국'
언제부터인지 '대한민국은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그만큼 드라마가 많다는 의미이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온통 드라마가 판을 친다. 이제는 케이블 채널에서도 자체 제작 드라마를 만들어 지상파와 경쟁한다. 올 연말 4개의 종합편성채널까지 생기면 온 국민이 드라마 홍수에 빠져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물론 매니지먼트사나 연기자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쾌재를 부른다. 그만큼 일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좀 다르다. 대다수의 드라마 제작진들은 '배우는 많지만 쓸만한 배우는 없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연기 꽤나 한다'는 스타들이 점차 안방극장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만연한 쪽대본이나 초치기 촬영이 싫다는 게 이유다.
또한 우후죽순 늘어나는 드라마 편수에 비해 제작 인력과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늘 비슷한 작품을 양산하는 '드라마 공화국'의 어두운 측면이다.
▶"난 어디든 갈 수 있는 스타야!"
이번 사태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된 건 촬영장에서의 한예슬의 태도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증언을 통해 한예슬의 안하무인한 행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녀의 이러한 촬영 태도가 가능했던 건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이 방송사가 아니더라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만심에서 비롯됐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워낙 드라마 제작 편수가 많고 방송사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안방극장에 한예슬 급의 스타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녀 정도의 인기와 연기력을 갖췄다면 제작사나 방송사 입장에선 무조건 '입도선매'해야 한다.
드라마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 동료배우와 스태프진을 챙기는 스타는 물론 많다. 하지만 일부 톱스타들은 촬영장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며 분위기를 망치기도 하는 게 사실"이라며 "사회적 물의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분명 찾는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막장 & 뻔한 얼굴…괴로운 시청자
그동안 시청자들은 엇비슷한 소재와 막장 소재에 익숙해졌다. '출생의 비밀' '재벌 2세' 같은 소재가 빠지지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 됐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워낙 드라마가 많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선 좀 더 자극적인 소재와 화면이 필요했던 것"이라며 "이때문에 소위 '착한 드라마'라고 불리는 작품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결국 자극적인 드라마에 주력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시청자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도 불편하지만, 더욱 짜증이 나는 건 '뻔한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몇몇 조연배우들은 정말 겹치기 출연을 많이 한다. 탁월한 연기력 때문이겠지만, 여기를 틀어도 저기를 틀어도 등장해 이젠 화가 날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시청률 30%를 넘는 히트작은 단 하나도 없다. 10%만 넘어도 수작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넘쳐나는 드라마에 지치고 실망했다는 뜻이 아닐까.서주영 기자 julese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