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왕'의 노림수 vs '조갈량'의 막음수
투수가 연이어 삼진을 잡아내고, 타자가 화끈한 타격솜씨를 보여주는 것만이 야구의 재미는 아니다. 결과를 떠나 지휘관들의 치열한 작전대결 또한 야구를 보는 또다른 흥미요소가 될 수 있다. 지난 14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KIA 전에서 '야왕' 한대화 감독과 '조갈량' 조범현 감독의 수싸움이 바로 그 좋은 예다.
이날 경기는 초반 5이닝 동안 팽팽한 투수전 양상으로 흘렀다.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은 6회. 5번 나지완이 6회 2사 1, 3루에서 3점포로 한화 선발 류현진을 두들겼다. 이것이 분수령이었다. 뒤쳐진 한대화 감독은 역전을 위해 6회말부터 필승의 대타작전을 내놨고, 조범현 감독은 이를 막기 위해 불펜진을 총가동하기 시작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지략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첫 번째 카드는 조 감독의 '막음수'. 5회까지 잘 던지던 서재응이 6회말 안타 2개와 볼넷으로 1점을 내주자 4번 최진행 타석 때 사이드암스로 손영민을 투입했다. 손영민은 이전경기까지 27경기에서 방어율 1.96에 4승1패 4세이브4홀드를 기록했던 KIA불펜의 주축. 그야말도 필승카드다. 그러나 손영민이 최진행에게 적시타를 내주며 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한 감독의 반격이 시작됐다. 한 감독은 2-3으로 따라붙은 6회 2사 1, 3루에서 대타로 좌타자 고동진을 내보냈다. 사이드암스로에게 좌타자가 강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사실인데다, 올 시즌 부쩍 좋아진 고동진의 해결력을 믿은 계략. 이 노림수는 동점타로 이어지며 보기좋게 성공했다.
3-3 동점이 되자 양팀 지휘본부는 더 바빠졌다. 조 감독은 손영민을 급히 내리고 전혀 투구 매커니즘이 다른 좌완 정통파 투수 심동섭으로 막음수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 감독의 노림수가 더 효과적이었다. 왼손 심동섭이 나오자 좌타자 김경언을 우타자 이대수로 바꿔준 것. 이대수는 심동섭의 3구째 슬라이더를 받아쳐 중전 적시타를치며 역전을 만들어냈다. 사실상 '야왕'의 노림수가 '조갈량'의 막음수를 이겨낸 것이다.
물론, 결과가 좋다고 해서 작전이 더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두 감독 모두 당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계책을 들고 나왔지만, 당시 상황에 의해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그래도 벤치의 보이지 않는 주도권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야구의 색다른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야왕'과 '조갈량'의 계책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