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선수들의 팬서비스 인식전환 없이 스피드업 의미없다

지난해 4월 2일 kt-SK의 개막 3연전 마지막날 모습. 스포츠조선DB

오늘 24일 꽃샘추위를 떨쳐낼 용광로가 팬들에게로 다가온다. KBO리그가 3년 연속 800만 관중의 황금시대를 이어갈 수 있을까. 수많은 난관을 뚫고 시장을 키워왔지만 늘 그렇듯 드러나 있는 복병은 없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올시즌 3개의 화두를 던진 상태다. 경기 스피드업, 클린 베이스볼, 그리고 통합 마케팅. 스피드업은 프로야구라는 상품의 질을 높이는 작업 중 하나다. 클린 베이스볼은 팬들의 불신을 걷어낼 강력한 자구책이다. 통합 마케팅은 갈길은 멀지만 프로야구 산업화를 통한 자생을 도모하는 로드맵이다.

KBO리그는 지난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안팎으로 적잖은 고통을 감내했다. 심판 비위와 KBO 입찰비리로 총재, 사무총장이 질타를 받았고 팬들의 비난 목소리가 거셌다. 선수들의 크고 작은 일탈 행위도 끊이질 않았다.

세상사 법이 없어 질서가 무너지진 않는다.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된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제도를 발표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지속적인 실천 의지를 점검하고 제도의 수정 보완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 KBO 사무국, 구단, 선수단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팬들은 야구가 없어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당장 프로야구가 외면받으면 야구 관계자들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뭔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위기인 경우가 많다. 도약을 노리는 2018년, 프로야구에도 긴장이 필요하다.

스피드업의 본질은 팬중심 야구

올해 KBO는 스피드 업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자동 고의4구 도입은 꽤 뒷말을 낳았다. 몇몇 현장 지도자들은 반대를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이어 일본 프로야구도 도입하자 전통에 대한 도전이라는 명분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또 비디오판독 시간도 최대 5분으로 제한된다.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횟수도 줄어든다. 투수의 12초룰(주자 없을 시 투구시간)도 더 엄격히 적용된다. 첫번째는 경고, 두번째는 볼판정과 함께 20만원의 벌금까지 주어진다. 압박수단이다.

사실 고의4구는 경기 중 자주 나오지 않는다. 한 두차례다. 포수가 일어서서 투수가 4개의 볼을 주고 받는 시간은 길지 않다. 팬들이 경기에 몰입하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여나가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이같은 측면에서보면 올해부터 도입되는 비디오판독 시 경기장 전광판에 중계방송 화면 노출 결정은 잘한 일이다. 스마트폰으로 중계를 보는 입장관중도 상당한 상황에서 미룰 이유가 없다. 또 특이상황 발생시 팬들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심판 팀장이 직접 장내 안내방송을 통해 해당 판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진일보된 조치다.

덧붙여 팬들이 가장 실망하는 것들을 없애려는 노력도 치열하게 진행돼야 한다. 팬들을 소중히 여기는 팬서비스는 기본 중 기본이다. 선수들에겐 10여초의 사인 시간이 팬들에겐 평생의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다. 야구든, 팬서비스든 대충 대충해도 팬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거라 착각해선 안된다.

불법 행위자는 더이상 동료가 아니다

KBO는 올해 클린 베이스볼을 선언했다. 심판의 경우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한다. 부정방지 교육을 의무화하고 교육 이수시 인증 제도를 도입한다. 클린베이스볼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을 활성화시켜 승부조작 및 부정행위 제보를 활성화한다. 선수 교육도 강화한다.

이와 맞물려 품위손상 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를 하기로 했다. 지난해 여러 불미스런 일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됐던 조치들이다. 당연히 도입되어야할 제도들이다. 교육과 처벌, 제재만으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프로야구 구성원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범죄는 반드시 드러난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같이 야구 하고, 야구판에서 한솥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불법행위자들과도 동료의식을 공유해선 안된다. 그들은 더이상 동료가 아니다. 그들 역시 선량한 선수들, 야구인들을 진정한 동료로 여겼다면 '모두가 먹는 우물에 독을 타는' 불법행위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가없는 공짜는 세상에 없다.

통합 마케팅은 팬들 사랑 속에서만 가능

정운찬 KBO 총재는 재임 3년간 추진할 업무 로드맵을 지난 1월 취임식에서 발표했다. KBO 조직 정비와 역량 강화, 제도 개선을 통해 향후 프로야구 산업화, 통합마케팅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장윤호 사무총장, 류대환 KBOP 대표이사로 조직 업무를 분담했다. 좀더 전문적인 마케팅 역량을 위한 투트랙 전략이다. 정 총재는 임기 3년 차인 2020년에는 메이저리그 성공의 바탕이 된 MLB닷컴과 같은 KBO닷컴을 만들겠다고 했다.

좋은 청사진이지만 리그 내실을 기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800만 관중이 흔들리는 순간 로드맵은 의미가 없다. 프로야구의 가치하락은 마케팅 작업을 수년, 수십년 뒤로 돌려놓을 것이다. 경기질 향상과 지속적인 관람 인프라 개선, 팬들에게 다가서는 다양한 마케팅 노력 등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 통합 마케팅이 궁극적으로 가야할 목표지만 수익만을 염두에 두고 앞만 보고 달려선 곤란하다.
박재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