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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항공권 업그레이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됐다. 선수들은 각 구단 소속이지만 대표팀에 소집되면 그 시점부터는 협회가 관리해야 할 자원이다. 대표팀 운영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당연히 협회에서 지출돼야 한다.
이에 대해 협회의 입장은 간단하다. 이코노미석으로 움직이면 된다는 주장이다. 재정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항공권 업그레이드 관련 이슈는 지난해 11월 말 곤지암에서 가진 실무위원회-협회 관계자 워크숍에서 논의됐던 부분이다. 그러나 합의된 것이 아니다.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는 "당시 선수들의 항공권은 이코노미석으로 하고 좌석 업그레이드 요청이 있을 경우 프로 팀에서 추가비용을 지불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합의된 사안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협회는 항공권 업그레이드 비용까지 증액된 KOVO 지원금에 포함시키자고 의견을 냈지만 KOVO 실무위원회와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했다는 전언이다. KOVO 지원금은 전임감독제, 합동훈련비, 전력분석관-의무트레이너 인건비로 한정됐다.
협회 내 국가대표 선수 항공권 업그레이드에 대한 세밀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일반인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면 힘든데 2m에 가까운 장신의 배구 선수들이 이코노미석을 타고 장시간 비행을 한다는 건 가혹한 처사다. 그렇지만 매 대회마다 선수들이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건 재정적 부담이 크다. 대회의 중요성을 따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함에도 컨트롤을 해야 할 오한남 대한배구협회장과 이사들은 손을 놓고 있다.
협회는 항공권 업그레이드를 구단 자율에 맡겼다. 그러나 형평에 맞지 않는 처사다. 항공권 업그레이드 여부에 따라 선수단 분위기와 사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큰 변수가 있다. 자유계약(FA) 문제다. 현재 FA 신분을 획득한 선수들은 소속팀 선수와 1차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항공권 차액분은 기존 팀이 해줬는데 선수가 다른 팀으로 옮겨 네이션스리그에 출전할 경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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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협회가 공정거래를 위반한 정황도 포착됐다. 협회는 지난 1월 말 국내 마케팅 B사와 마케팅 대행 계약을 했는데 입찰방식을 택하지 않고 B사와 수의계약을 했다. 기획이사는 계약이 이뤄진 뒤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됐다. 오 회장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 사안에 대해 화를 냈다고 알려졌지만 결국 이 사안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무엇보다 B사가 제안해 계약한 금액이 터무니 없다. 연간 2억5000만원, 4년간 총 10억원이다. 얼핏 보면 대형 계약처럼 보이지만 협회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에서 벌어들이는 입장료만 해도 연간 2억5000만원이 넘는다. 게다가 협회는 여자대표팀도 관할한다. 세계에서 배구를 가장 잘 한다는 김연경(30)의 콘텐츠만 제대로 마케팅해도 2억5000만원은 충분히 벌 수 있다는 것이 마케팅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협회는 B사에 터무니없는 돈을 받고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경기운영 등 모든 권한을 B사에 넘겼다.
협회는 사상 최초로 전임감독제를 시행하면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까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부실한 행정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 배구계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스포츠2팀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