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 우승]④'평균연령 37.5세' 이효희-정대영, '베테랑 파워' 통했다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8-03-27 21:04


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이효희(38)와 정대영(37). 둘의 평균연령은 37.5세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아니, 이미 은퇴할 때가 지났다. 30대에 접어들어도 '노장'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이효희와 정대영은 40대를 바라보고 있다.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노장이라고 하기엔, 한 차원 넘어섰다. 베테랑이라고 하면 조금 흔한 수사다. 하지만 마땅한 표현이 없는 것도 사실. 연륜과 기량, 그리고 품격을 모두 갖춘 베테랑이 그래도 가장 알맞을 듯 하다.

세터 이효희는 1998년 프로 출범 전 실업리그 KT&G에 입단했다. 신영진 안혜정에 밀려 6년 간 빛을 못봤다. 2005년에서야 주전를 꿰찼고, 2005~2006시즌 V리그 원년 우승 멤버가 됐다. 이후 흥국생명, IBK기업은행을 거친 이효희는 2014년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었다. IBK기업은행과의 협상은 결렬됐다. 이효희는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었다.

센터 정대영은 1999년 세계청소년선수권서 한국을 3위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이효희보다 1년 늦은 1999년 현대건설에 입단하며 실업 무대에 데뷔했다. 정대영은 일찍 빛을 봤다. 2007년 GS칼텍스로 둥지를 옮긴 정대영은 2007~2008시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대표팀에서도 펄펄 날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한국을 36년만에 4강으로 견인했다. 당시 정대영은 팀의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후 정대영은 이효희와 같은 시기 FA로 풀렸고, 함께 도로공사에 입단했다.


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청춘을 바친 팀의 선택을 받지 못한 두 베테랑. 서운해도 어쩔 수 없는 프로의 생리다. 그 때 이효희는 34세, 정대영은 33세였다. '이효희 정대영이 더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이효희 정대영을 품에 안은 게 도로공사다. 이효희는 연봉 2억원, 정대영은 1억8000만원에 계약했다.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세간의 눈길은 싸늘했다. 비관론이 판쳤다.

사건도 있었다. 때는 2016~2017시즌. 외국인선수 '왕따 논란'의 주동자로 이효희 정대영이 거론됐다. 두 베테랑은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여론은 등을 돌렸다. 성적도 바닥을 쳤다. 도로공사는 여자부 최하위인 6위였다.

올 시즌에도 도로공사를, 또 두 베테랑을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아직도 이효희야? 또 정대영이야?' 바깥의 시선이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었다. 온 몸의 부상에 고통스러워도, 노쇠한 육신 때문에 회복이 더뎌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효희는 올 시즌 정규리그 29경기, 정대영은 30경기에 나섰다.


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해질녘 노을이 가장 붉게 타오르듯, 두 베테랑은 혼신을 다 했다. 정대영은 거침없이 속공을 때려 넣었다. 여자부 속공 부문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동공격, 시간차 부문에서도 각각 6위, 9위에 올랐다. 센터의 꽃, 블로킹 부문에서도 정대영은 5위를 기록했다. 비록 전성기엔 조금 못 미치지만, 37세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의 활약이었다.

정대영이 날아오르는 전위, 그 뒤엔 이효희가 있었다. 세월의 흐름 탓에 풋워크 스피드는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시야는 넓어졌고, 판단의 속도는 빨라졌다. 노련미다. 이효희는 올 시즌 정규리그 세트당 평균 10.070개의 세트를 성공, 이다영(현대건설·세트당 11.491개)에 이어 세트 부문 2위를 기록했다.


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그렇게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견인한 두 베테랑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경기력은 물론, 위기 때 마다 팀의 중심을 잡았다. 베테랑의 힘이었다. 나이, 수치론 가늠할 수 없는 가치다. 팀에 최초 통합 우승 타이틀을 선사한 두 베테랑의 미소가 밝다. 지금 이 순간, 이효희 정대영의 표정에서 실업리그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의 설레임이 읽힌다. 베테랑의 힘이 통했다. '끝'을 말하긴 아직 이른 모양이다.


화성=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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