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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 축구의 얼굴이자 희망이었다.
비움, 그리고 채움
"어휴, 이런 시골까지 어떻게 찾아왔어요." 18일(이하 한국시각) 이탈리아 로마에서 남서부의 한적한 시골마을 트리고리아에서 만난 황 감독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K리그 사령탑 시절 승부의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편안한 미소였다.
지난 2월부터 이어진 유럽 생활도 어느 덧 두 달을 넘겼다. 황 감독은 "축구는 정말 원없이 보고 있다. 독일에서는 프로와 유스 경기를 합쳐 20경기를 본 것 같다. 금요일과 토요일, 일요일 3일 내내 분데스리가를 보기도 했고 TV까지 합쳐 6경기를 연달아 본 적도 있다"며 "남들은 지겹지 않느냐고 묻는데 나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겠다. 즐기면서 축구를 보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유럽 변방' 이탈리아? 전통을 배운다
"이탈리아 축구는 어떤 것 같아요?" AS로마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길에 황 감독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월드컵을 4차례나 제패한 이탈리아 축구의 명성은 빛이 바랬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네 번째 '별'을 달면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까지 올라섰던 이탈리아는 현재 15위에 그치고 있다. 1993년 FIFA랭킹이 처음 발표된 이래 가장 낮은 순위다. 클럽대항전에서도 지난 2009~2010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인터 밀란 이후 우승팀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유벤투스가 5시즌 만에 대회 결승에 올랐으나 FC바르셀로나(스페인)에게 1대3으로 완패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올 시즌에는 AC밀란의 홈구장인 산시로스타디움에서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펼쳐진다. 그러나 16강에 올랐던 AS로마와 유벤투스가 모두 탈락하면서 '남의 잔치'를 차려주게 됐다. 황 감독이 '유럽의 중심'이 아닌 이탈리아를 찾은 이유는 뭘까.
황 감독은 "잉글랜드와 독일은 그동안 경험했지만 이탈리아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 축구가 가진 장점은 잉글랜드, 독일과 분명히 다르다. 언젠가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몰라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에서 지켜보니 이탈리아 특유의 중원 싸움과 압박, 수비 중심의 카운터는 여전하더라"면서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명확한 색깔을 유지하면서 팀을 만드는 점은 높이 살 만 하다"고 덧붙였다.
"용수야, 요즘 좋더라?"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끓었던 승부사의 피가 금방 차가워 질 리 없다. 황 감독은 이역만리 유럽 연수 중에도 K리그 클래식 경기를 지켜보면서 현장에 대한 감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최용수 FC서울 감독에게 전화를 받았다. '형님이 안계시니까 외롭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말 외로울 틈이 있어서 그런걸까(웃음)." 황 감독은 포항 재임 시절 최 감독이 이끄는 FC서울과 외나무다리에서 자주 맞붙었다. 현역시절 A대표팀 선후배 공격수로 활약했던 두 지도자의 라이벌전은 명승부의 향연이었다. 황 감독은 "서울이 올 시즌 정말 좋더라. 이제 시즌 시작이기는 하지만 경기를 보면 선수단 사이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상당해 보이더라"며 "포항 시절 참 좋은 승부를 펼쳤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맞붙어 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최 감독이 유벤투스와 나폴리 경기를 관찰하면서 스리백을 완성했다고 들었다"며 "현장에서 이탈리아 축구를 지켜보면서 번뜩이는 점들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트리고리아(이탈리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