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소치, 응답하라 2014]⑥스피드 노선영, '암투병' 동생 위해 오늘도 달린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2-05 09:42



"진규야, 네 몫까지 내가 달리고 올게."

남매에게 다른 말들은 필요없었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공릉동 원자력 병원. 병상에 누워있는 남동생 노진규(22·한체대)도, 그를 지켜보던 누나 노선영(25·강원도청)도 그 다짐 하나로 서로 마음을 나누었다.

노선영은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중장거리 간판선수다. 아시아권에서는 최강자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매스스타트와 추월에서 금메달, 1500m에서는 은메달을 따냈다. 2006년 토리노대회에서는 1500m 19위, 3000m 32위를 기록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는 1500m 19위, 3000m 30위를 기록했다. 팀추월에서는 8위에 올랐다.

노선영의 동생 노진규는 2010~2011시즌부터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올랐다. 이어 열린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1000m와 1500m에 이어 3000m 슈퍼파이널에서 정상에 등극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쇼트트랙팀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1000m와 3000m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노진규의 상승세는 이어졌다. 2013~2014시즌을 앞두고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로 급성장했다.

남매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동반 출전을 꿈꿨다. 태릉선수촌에서 함께 땀을 흘렸다. 휴가를 받아 집에 가면 소치동계올림픽 이야기를 하며 밤을 지샜다.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경기를 다 마친 뒤 소치 선수촌에서 재미있게 놀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남매의 다짐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2013년 9월 월드컵 1차 대회가 끝나고 노진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왼쪽 어깨에서 뼈암의 일종인 골육종이 발견됐다. 골육종은 10~20대 남성의 무릎이나 팔 등에서 가장 많이 발병한다. 100만명 중에 15명 정도 발생하는 흔치 않은 병이다. 처음에는 그저 종양일 뿐이었다. 노진규는 진통제를 맞아가며 훈련을 했다. 지켜보던 노선영은 안쓰러웠지만 뭐라 할 수 없었다. 쇼트트랙은 그 어느 종목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국내 선발전 통과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소치올림픽이 동생에게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누나는 먼발치에서 동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누나의 응원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1월 14일 노진규는 훈련 도중 넘어져 왼팔꿈치와 어깨가 부러졌다.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여기에 종양이 더욱 악화됐다. 혹시나 하면서 받은 검사 결과 종양은 이미 6㎝에서 13㎝까지 자라 악성으로 변해 있었다.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열린 빙상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노선영은 "동생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는데 안타깝다. 나도 아쉽다"면서 "나라도 가서 열심히 하겠다.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말했다. 수술을 앞두고 병상에 누운 남동생에게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25일 노선영은 한국을 떠났다. 파리를 거쳐 네덜란드 헤렌벤에 캠프를 차렸다. 컨디션을 조율했다. 얼음판을 지치다 힘들때마다 항암 치료를 받고 있을 동생을 생각했다. 힘들어할 시간이 없었다. 몸을 끌어올렸다. 소치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동생을 위한 마음은 투지로 바뀌었다. 목표는 팀추월 메달 획득이다. 양신영(24·전북도청) 김보름(21·한체대)과 함께 팀을 이뤄 나선다. 2013년 12월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1일 소치에 입성한 노선영은 동생을 위해 꼭 메달을 들고 가겠다는 각오다.

"원래 팀 추월에서 메달 따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이번에 동생이 같이 소치에 오지 못했어요. 동생을 위해서라도 꼭 메달을 따서 돌아가고 싶어요."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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