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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이제야 조금 실감이 나네요."
김진순 대한민국 18세 이하(U-18) 여자핸드볼 대표팀 감독(43·인천비즈니스고)이 슬며시 웃어 보였다.
트로피를 손에 쥔 김 감독은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난다. 덴마크를 꺾고 우승했을 땐 '이제야 경기가 끝났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안도감이 먼저 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김진순호'의 출발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선수들이 손발을 맞출 물리적 시간 자체가 적었다. 출국 뒤에도 문제가 계속됐다. 비행기 문제로 무려 40시간에 걸쳐 북마케도니아에 도착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 모든 위기를 딛고 승승장구했다. 유럽팀을 줄줄이 격파했다. 스위스(32대28승)-독일(34대28승)-슬로바키아(34대30승)-루마니아(33대31승)-네덜란드(26대24승)-스웨덴(33대27승)-헝가리(39대29승)-덴마크(31대28승)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김 감독은 "우리가 결전지로 가는 길 고생을 많이 했다. 고민만 정말 많이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행인지 출국 전에 나쁜 기운이 다 빠져서 그 뒤부터는 잘 됐다"고 했다.
김 감독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 출신이다. 현역 시절엔 일본 리그에 진출해 2005년 득점왕까지 오른 바 있다. 그는 은퇴 뒤 한동안 육아에 전념했다. 이후 생활체육 지도자를 거쳐 인천비즈니스고의 코치로 부임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연령별대표팀을 이끌었다.
그는 "처음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는 안 한다고 했었다. 연령별대표팀 감독으로 세계 대회에 나가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세 번 안한다고 했었다. 사실 2018년 오성옥 감독님을 따로 코치로 세계 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코치라서 부담이 '덜'했다. 이번엔 감독으로 가게 돼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그 무게감이 있었다. 그저 대표팀 다녀와서 '김진순이 감독해서 그냥 그랬잖아'라는 말만 듣지 말자고 생각하며 했다. 책임감을 갖고 했다"고 돌아봤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김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다. 선수들을 차분히 독려하는 리더십이 빛났다는 평가다. 그는 "연습 때는 엄하게 했다. 잘 되지 않는 부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때 화를 내봐야 선수 멘털만 흔들릴 뿐이다. 벤치를 차분하게 보는 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가 상대를 뚫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선수들은 내 얘기를 듣고 경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차분해졌다"고 말했다.
한국 핸드볼은 이번 우승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자타공인 세계 최강이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세계무대에서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다. '리틀 태극전사'들이 세계 정상에 오르며 다시금 희망을 갖게 됐다.
김 감독은 우승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그는 "헝가리와의 경기였다. 상대가 우리의 구멍을 찾아서 괴롭혔다. 작전 타임을 불렀다. 다시 코트에 나간 선수들이 내가 한 말을 그대로 펼쳐보였다.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닭살이 돋았었다. 힘들 때는 선수들끼리 '수비부터 하자'며 힘을 냈다. 우리 아이들이 '참 좋은 선수구나' 싶었다. 이게 바로 한국의 핸드볼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선수 구성을 급하게 했다. 내가 하려는 수비에 맞는 선수들을 뽑았다. 훈련을 해보니 생갭다 잘하는 선수도, 다소 부족한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포지션 전반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선수들이 흐름도 잘 탔다. 대회 때는 선수들의 부족한 걸 봤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고마웠다. 피지컬 좋은 유럽 선수들과 몸 부딪쳐가면서 하는 게 무서울 법도 한데 다들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소속팀으로 돌아왔다. 그는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줬다. 최태원 대한핸드볼협회장님께서도 선수들이 행복해보였다며 축하해주셨다. 나는 앞으로 더 배울 게 더 많은 지도자다. 많이 보고 배우고 연구하고 듣겠다"고 다짐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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